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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정 그리고 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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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악양정 그리고 일두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성인이 나라를 다스려야 이상국가가 된다는 주자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교육을 강조하였다. 세자로 책봉되면 세자시강원을 설치하여 聖人이 되는 공부를 시켰다. 우두머리 직책은 사부(師傅)이며 영의정은 이고 좌우의정 중 한 명이 로 된다. 이사는 종1품 찬성이 겸직하고 종3품 보덕 이하 정7품 설서까지 5명은 세자 교육에 전념하였다. 연산군의 세자시절 세자를 지도하였던 두 분이 우리 곁에 있었다. 정여창과 조지서이다.

정여창(14501504)의 본관은 河東.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이다. 경남 함양 덕곡리 개평촌에서 태어났다. 이름을 알리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기에 주위에서 지어주는 대로 따르며 호()는 자기의 의지가 들어있고 허물없이 쓰기 위함이다. 정여창 호는 일두수옹이다. 18세 때 이정유서(二程遺書)를 보다가 정이천의 천지간일두(天地間一蠧)’라는 말에서 느낀 바 있어 一蠧를 호로 삼았다. 말년에는 '졸기만 하는 늙은이'라는 뜻의 수옹(睡翁)이라 하였다. 좀 두이며 좀이란 빈대좀, 돌벼룩좀, 작은좀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천지간에 한마리 좀이라고 본인을 낮추어 상대에게 편하게 불리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22세 때부터는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하다가 성종 21(1490) 소격서 참봉이 되었다. 그해 가을 문과 별시에 합격예문관 검열을 거쳐 세자시강원 설서로서 동궁이었던 연산군의 스승이지만 곧고 강직한 성품으로 인하여 그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안음현감으로 임명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연산군 4(1498) 무오사화  김일손 등의 사초가 문제되어, 국왕의 스승이었음에도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지역의 청년들과 학동들을 데려다가 성리학을 가르치고, 유지들을 만나 한성부와 시국담론, 시문을 주고받으며 변방 지역에 학문과 문물을 전파하였다. 1504 종성 유배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갑자사화(1504) 때 부관참시 되었다.

일두 선생은 1483년경 33세에 지리산을 두루 둘러보고 섬진강 어귀에 집과 악양정(岳陽亭)을 짓고 처자를 데리고 은거하며 수양과 강학에 몰두하였는데 화개 덕은동이다. 1490년 성종의 부름에 사직상소문까지 올리며 사양하였으나 허가하지 않아 악양정을 떠났다가 한양을 벗어날 때면 찾았다. 섬진강을 오르내리는 배가 잘 보이는 섬호정 앞에 一蠹 선생의 시비가 있다.

風蒲泛泛弄輕柔 / 四月花開麥己秋 / 看盡頭流千萬疊 / 孤舟又下大江流

솔바람 부드러이 갯버들을 흔들고 / 늦은 봄 화개골은 보리 익어 가을 같구나 / 지리산 천만 봉을 두루두루 구경하고 / 조각배에 몸을 싣고 큰 강 따라 흘러가네.

일두 선생을 우러러 보는 많은 사람들이 악앙정을 찾는다. 남명 선생은 15584월 진주방면에서 쌍계사 쪽 지리산을 유람한다. 이곳을 지나면서 기록을 남긴다. 유두류록》 〈도탄에서 1리쯤 떨어진 곳에 정여창 선생이 살았던 옛 집터가 남아 있다. 이곳은 삽암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이다. 밝은 철인의 행불행이 어찌 운명이 아니랴?

하동읍에서 화개로 길을 잡고 남도대교가 보이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덕은리 상덕마을 입구에 악양정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아름드리 정자나무에 까치가 둥지 주변을 날아다니며 요란한 환영인사를 보낸다. 차밭을 따라 오르니 둥실한 기와집이 보이고 ㄱ자형 안내판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돌아보니 구례에서 흘러 온 물과 쌍계계곡 물이 모여 곧게 흐르다 마을 앞에서 산기슭을 깎아 큰 자갈이 쌓였다. 건너편에는 물의 속도가 줄어 모래를 내려놓아 백사장이 되어 여기가 도탄이며 섬진나루터였다. 현재의 악양정은 1899년 이후에 일두 선생을 배향하기 위하여 덕은사 경내에 중건되었는데 정면 4칸으로 문을 달아 잠을 잘 수 있겠다. 담 밑 매화가지에서 향기를 풀어내고 동백꽃이 눈부시게 한다. 마당에 뿌리를 둔 소나무가 가슴 높이에서 굽어 몸통을 담 밖에 두고 있다. 마치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일두 선생이 지족당 선생 보다 4년 먼저 태어났지만 두 분은 연산군 10(1504)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공통점이 많다. 세자 연산군의 스승으로서 곧고 강직한 성품과 올곧게 지도하였다. 조지서는 연산군을 엄히 꾸짖기도 하였다. 살아서 스승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였지만 청사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일두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청년들을 가르치고 깨우쳤다 하니 스승의 길을 생각해보는 좋은 사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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