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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과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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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일과 생일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는 바쁘다. 영상통화라도 한 번 하려 하면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병원에 계신 외증조할머니를 뵈러 와서 영상통화로 얼굴이라도 보여드리려 하는데 생일 파티 중이란다. 같은 날 생일인 친구가 있어 초대도 받고, 본인 생일에 초대도 하고 보니 하루가 짧은 모양이다. 다행히 올해 생일은 일요일이라 그나마 아들이 데리고 다니며 생일잔치를 하고 있나 보다.

면소재지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는 우리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반 친구라야 고작 10명 정도이다. 내 생일 선물로 사이드테이블을 보내면서 올해 희연이 생일은 룸을 빌려서 해달랍니다. 요즘 다들 그렇게 한 대요.’ 멋쩍게 웃으며 건네던 큰아이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증조할머니랑 눈도 맞추지 못하고 짧게 통화를 끝냈다. 조금 후 보내온 동영상에는 악을 쓰며 불러주는 친구들의 생일 축하합니다.’는 노래가 아니라 함성이었다. 친구들은 노래를 끝내고 준비해온 선물들을 전하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로 깔깔대며 웃고 있다.

행복한 모습이어서 다행이다. 저 맑은 모습으로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양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젊은 세대와 달리 아직도 음력 생일이 진짜 생일인 것 같은 나도 작년부터 양력을 쇠기로 하였다. 내가 태어난 해의 양력이 손녀의 생일과 같았다. 우연이지만 싫지 않은 우연이다.

손녀와 같은 날을 내생일로 정하고 아이들에게 미리 가지고 싶은 것의 목록을 보낸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 가 아니라 선수를 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평소에 가지고 싶었지만 내돈으로 사고 싶지 않았던 물품을 골라 미리 보낸다. 생일 전에 나는 생일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는 손녀의 생일 선물은 보낼 수 없는 해다. 요란한 이모티콘으로 메시지만 보냈을 뿐이다. ‘가족 여러분께 알립니다.’로 시작한 아들의 요구사항은 1년간은 희연이에게 일절 선물과 용돈은 보내지 말아 주세요.’였다. 물건이 귀한 줄도,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머니나 이모할머니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지라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선물꾸러미가 많았다. 아들의 용단이 대견했다. 정말 귀하게 여긴다면 어떻게 교육하고 양육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된다. 그런 결심을 한 부모이지만 아이들 사이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 생일 파티는 원하는 곳에 가서 해주기로 했단다.

다섯이나 되는 자녀들의 생일을 해마다 집에서 챙기던 어머니는 지금 병원에 계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과 갖은 나물을 준비하여 작은 소반에 차려놓고 빌고 계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이것저것 챙겨 먹이신 어머니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참 건강한 편이다. 병원에 가는 일도, 나이 들면서 흔히 생기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성인병을 앓는 형제들도 하나 없다. 일찍 혼자가 되신 어머니는 여럿인 우리를 챙기셨지만 정작 한 분인 어머니를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죄스럽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의 생신도 지나갔다. 골다공증이 심해 갈비뼈 여러 개에 금이 가서 통증이 심하시다. 큰병 없이 잘 지내주셨는데벚꽃이 한창인 작년 이맘때, 정동원 팬이 되신 어머니가 어린 시절 동원이 사진을 보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벚꽃이 만개한 그 길에 다시 가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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