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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역 청수역 그리고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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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수역 청수역 그리고 정수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조식(曺植)의 본관은 창녕(昌寧). ()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이며 아버지는 승문원판교 조언형(曺彦亨), 어머니는 인주(仁州)이씨이다. 는 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이며 관례 뒤에 본이름 대신으로 불렀다. 남명 조식(曺植)1558411일부터 426일까지 두류산 유람을 하고 유두류록을 남긴다.

1558424. 저녁에 정수역(旌樹驛)에 이르렀다. 역관 앞에는 정씨의 정문이 세워져 있었다. 정씨는 승선 조지서의 아내이며, 문충공 정몽주의 현손녀이고 승선은 의로운 사람이었다(夕到旌樹驛.館前竪有鄭氏旌門.鄭氏,趙承宣之瑞之妻.文忠公鄭夢周之玄孫.承宣,義人也). 부인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성을 쌓는 죄수가 되어, 젖먹이 두 아이를 끌어안고 살면서도 등에 신주를 지고 다니면서 조석으로 제를 지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니 절개와 의리를 둘 다 이룬 것이 지금에도 이 정문에 남아 있다. 밤이 되어 우점으로 갔는데 겨우 말()만한 크기의 방 하나뿐이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방에 들어갔지만 다리를 펼 수 없었고, 벽은 바람도 막아내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답답함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잠시 후에는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베고서 단잠이 들어 밤을 보냈다. 1558425. 역관에서 아침밥을 먹고 칠송정에 이르러 상고대에 올랐다가 다회탄을 건너서 일부 헤어지고 뒷날 이희안과도 이별을 했다.

조지서(趙之瑞)는 백부(伯符), 는 지족당(知足堂충헌(忠軒).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조찬(趙璨), 어머니는 생원 정삼의 딸이고 누이는 남명 조식(曺植)의 할머니이다. 호는 본명이나 자 이외에 쓰는 이름.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이름이다.

유두류록에서 정수역(旌樹驛)이다. '기를 나무에 매단 역'이라 하여 역관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겠다. 남명이 정수역을 찾았을 때는 조지서가 갑자사화(1504)로 죽임을 당한지 54년이 되고 역관 앞에 정씨 부인의 정문이 있다고 하니 정수역은 조지서 무덤 아래에 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기를 달았을 추정되는 고목나무를 찾으면 역사 스토리는 명확해질 것이다.

난중일기》 〈159761. 비가 계속 내렸다. 일찍 출발하여 청수역(淸水驛)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였다. 저물녘 단성 땅과 진주 땅의 경계에 있는 박호원의 농사짓는 종의 집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반갑게 대하기는 하나 잠자는 방이 좋지 못하여 간신히 밤을 지냈다. 정수리 옥산서원 옆 시냇가에 이순신백의종군로 청수역과 강정ㅡ쉼터라는 비석을 세워 청수역을 재현하고 있다. 역관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옥이 쌓여 있으면 산이 빛을 머금는다(玉薀山含輝)’라는 玉山의 내옥샘에서 발원한 엷은 녹색의 물이라 청수역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조선 고종 을미년(1895)에 부사(府使)를 고쳐서 군수(郡守)라 하였다. 병오년(1906)에는 진주의 청암(靑岩)대야천(大也川)가서(加西)종화(宗化)정수(正水)운곡(雲谷)북평(北坪)7리를 하동에 내속시켰다. 1914년에 대야천면과 북면(北面)을 합하여 북천면으로 하고, 가서와 종화를 합하여 가종면(加宗面)으로 하였으며, 정수운곡북평을 합하여 옥동면(玉東面)으로 하였다. 곤양군이 폐군될 때에는 금양면과 서면이 하동에 내속되었다. 1929년에 가종면과 옥동면을 합하여 옥종면(玉宗面)으로 하였다.

유두류록에는 정수역(旌樹驛)이다. 旌樹驛(기 정)왕명을 받은 신하에게 신임의 표시로 주던 기이다. 헝겊이나 종이 따위에 글자나 그림, 색깔 따위를 넣어 어떤 뜻을 나타내거나 특정한 단체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나무 수)자와 (세울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이 합()하여 맑다를 뜻하고, 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물을 뜻한다.

()역참이라는 뜻을 가진다. 역참(驛站)은 조선 시대에 있던 공공의 기별, 역마, 역원 등 여행 체계를 합쳐서 이르는 말이다. 대개 25리마다 1참을 두고 50리마다 1원을 두었다. ()은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에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고, 정수역에서 청수역로 되었다. 1906에는 정수리(正水里)로 표기되어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 은 하나()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 살핀다를 합하여 바르다를 뜻한다. 마을의 역사를 찾는 것은 먼저 살아온 사람들이 어디서 살아왔는가를 살피고, 옛 길을 밝히는 것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오늘의 지혜로 삼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흔적이 없어지기 전에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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