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연입니다. 저의 집 모든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의욕을 보인다. 대문 밖이나 집안에 들어서면 품위를 높이고 집안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우선적으로 방지(方池)를 원형 복구하였단다. 方池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우주관을 보여 주는 연못이다.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이고 사각형은 땅을 나타내며 섬에서 피어난 꽃은 자연의 조화이며 물은 생명이다.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우주의 형체를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는 장점 때문에 서양천문학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천원지방(天圓地方)은 고대 우주관의 주류로 자리매김해왔다.
앞에는 七星峰이 펼쳐지고 뒤로는 형제봉이 빙 둘렀고 바람과 구름이 만나는 이곳은 내륙과 이어지는 회남재가 있다. 솔방울 닮은 볼록 솟은 솔봉(峰) 아래 남으로 단계별 건물을 이어나갔다.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행랑채는 남아있고 사랑채, 대문채 겸 바같 행랑채, 연정(淵亭), 곡간, 별당, 사당 등은 소실되었는데 제 모습을 갖추면 솔잎 향이 멀리멀리 펴져 그 향기에 봉황이 날아올 듯하여라!
方池를 내려다보며 우주를 논하고 꽃을 감상하던 淵亭 터와 병풍 역할로 동백을 심어 안채를 살짝 가렸던 사랑채 터 사이 계단을 올라가면 안채이다. 용마루의 적새는 암기와를 엎어 여러 겹 포개 무게중심을 집중시켜 안정감을 주고 있다. ㄱ형 지붕은 양쪽 지붕의 빗물을 모아 떨어지게 하고 있다. 각 지붕의 빗물을 공동 처마 끝으로 모으기 위하여 지붕골은 비스듬한 구조이다. 빗물은 처마 끝 홈에서 받고 두 개의 홈을 연결하는 덮개는 수키와로 모양을 내고 있다. ㄱ형 지붕의 특성을 이용한 공간 활용의 본보기가 되고 있단다. 정면은 八자형 지붕으로 용마루 바로 아래는 사각형이다. 측면 용마루 밑 벽은 삼각형이며 하단은 부채꼴 모양이다. 도리는 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로 작은집은 3개 큰집은 5개의 도리가 들어간다. 화사별서는 7개 도리로 구성되어 희귀한 구조이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역사성과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마당 처마 아래 2뻠 정도 홈을 판 석조가 있고 옆에 아래를 둥글게 다듬은 한길 정도 나무 막대가 있다. 아래를 석조 홈에 끼우고 위에 호롱불을 얹어 야간작업이 가능하게 하는 조명 받침대이다. 목재는 쪄서 사용하였는데 수분 증발은 물론 살균되며 송진이 골고루 퍼져 내구성이 강하다. 분야 최고 장인들의 솜씨와 엄격한 감독으로 건축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지붕을 수리하지 않았고 내놓으라는 기술자도 혀를 내두른단다.
기둥은 주춧돌이 높게 받쳐 비바람이나 지열을 피할 수 있는 구조이다. 내측(內廁)은 냄새가 나지 않고 퇴비로 전환되게 왕겨를 사용하였다. 뒷 돌담은 비탈을 절개하여 돌을 마름모로 다듬어 대각선을 아래로 쌓아 안정감을 준다. 담장 끼리 접촉 부위는 높이가 다른 직사각형 돌을 수평으로 어긋나게 쌓아 하중을 분산시키고 있다. 넓은 후원에는 별당과 사당이 있었다.
행랑채 뒤로 담을 따라 내려가다 개울너머에 배가 물에 들어가려는 모형의 바위가 있다. 다듬고 섬세함과 우아함이 풍기는 필체로 화사별서(花史別墅) 융희기원후제일회신유중추상완서(隆熙紀元后第一回辛酉仲秋上浣書)라 새겼다. 1921년 8월 상순 화사별서 재건과 화사의 회갑을 기념하는 것이다.
화사(花史)는 조선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을 지낸 조준(趙浚)의 직계손 조재희(趙載禧, 1861~1941)의 호이다. 별서(別墅)는 농사를 목적으로 지은 별장이다. 살던 가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두고 있으나 화사별서는 명당에 명당을 찾아 본가에서 천리 길이나 떨어져 있다. 본집은 경성부 당주동(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있었고 지금의 대문은 솔봉 아래에 북문을 옮겼다. 한양으로 출입은 회남재를 넘어야 하기에 북문이 필요했던 것이다.
화사별서는 경남유형문화재이며 〈조부자집〉으로 알려졌다. 박경리 소설 《토지》 배경이 된 최참판댁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조항연씨는 차분하게 ‘서희’를 불러오는 별당을 복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양현은 별당으로 뛰어들었다. 서희는 하얀 모시 치마 저고리를 입고 푸른 해당화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토지 제5부 7장 빛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