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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과 한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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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간림과 한유한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취간림 입구에 한글 〔국가산림자산 악양 취간림 지정 목적 및 사유〕라는 안내판이 있다. 〈고려 시대부터 악양면 정동리 악양천 변에 수구막이를 위하여 조성된 숲으로 면소재지에 있어 많은 관광객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구한 전통을 가진 마을 숲으로 산림문화 자산으로 지정하여 널리 보전할 가치가 있다. 고려말 녹사 한유한(韓惟漢)이 당시 하동의 중심지였던 악양현 외둔 마을에 안착하여 선생의 인품과 학식이 유명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마침내 서당을 열어 후학의 훈도에 정진하였다. 정서리 악양천 변에 마을 기운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거나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구막이 숲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수구막이(水口막이)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멀리 돌아 흘러서 하류가 보이지 않는 땅의 생김새를 이르는 말이다.

한유한은 누구인가? 그는 대표적인 지리산의 은자였다. 고려 무신집권기 최충헌의 독재와 매관을 보고서 장차 난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였다. 그는 정치 사회적 혼란을 피하여 개경을 떠나서 은거하기에 적합한 이상향으로 알려진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조정에서는 서대비원 녹사(西大悲院 錄事)의 직을 제수하였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한유한은 무신집권기 도교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며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유학자들은 그를 지리산의 군자(君子)로서 권간이 전횡하던 정치적 혼란기에 벼슬하지 않고 입산하여 절의를 지킨 인물로 생각하였다. 이와 달리 신산 방장산의 신선(神仙)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지리산에 모습을 감추어 신선이 되었을 것으로 상상하였다.

하동에서 화개로 가다보면 길게 눕힌 돌에 악양동천(岳陽洞天)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악양’이라는 뜻이다. 곧 명물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벚나무 터널을 지나자 외둔 삼거리가 나온다. 봉대천이 섬진강에 합수되는 지점이며 평사리문학관 길을 만난다. 그곳 큰 바위에 비석이 있다. 뒷면은 벼랑 끝이라 접근할 수 없고 앞면은 그림자가 빗면을 덮고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글자를 인식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사연을 담고 있을 듯하며 한글 안내판을 기대해 본다.

그 옆에는 기다렸다는 듯 안내판이 반겨준다. ‘섯바위(鍤巖:삽암) 이야기’이다. 〈삽암은 꽂힌 바위라는 뜻이다. 오래 전 이 바위가 있는 곳은 영호남을 연결하는 나룻배가 다녔다. 고려 말 한유한 선생이 난세를 피해 이곳에 은거하면서 낚시로 소일하였다. 임금이 사신을 보내니 “外臣이 아는 것이 없사오니 왕명을 받을 수 없사옵니다”하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사신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벽에 一片絲綸飛入洞 始知名字落人間(한 조각 사륜이 산골짝에 날아드니 비로소 이름이 세상에 알려짐을 알았네)라는 글을 적어두고 북쪽 벽의 작은 창문으로 도망쳐 버렸다〉 사륜(絲綸)이란 조서를 일컫고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이다.

남명 선생의 유두류록(1558.4.16.)에서 〈잠깐 사이에 악양현을 지나고, 강가에 삽암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녹사 한유한 옛 집이 있었다. 고려가 혼란해질 것을 예견하고 처자식을 데리고 와서 은거하였다. 조정에서 녹사로 삼았는데 하루 저녁에 달아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아! 국가가 망하려 하니 어찌 어진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있겠는가. 어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착한 사람을 선양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섭자고(葉子高)가 용을 좋아한 것만도 못하니, 나라가 어지럽고 망해가는 형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가득 따라놓고 거듭 삽암을 위해 길게 탄식하였다〉 대나무 가지를 잡고 삽암 뒤로 내려간다. 발아래 강물이라 발바닥이 찌릿찌릿 거린다, 바위 면을 사각형으로 다듬고 모한대(慕韓臺)그리고 松南 李世立이라 새겼다. 위에는 ‘又’자의 형태를 식별할 수 있는데 한선생이 낚시하던 곳이라 취적대(取適臺)의 ‘가질 取’자의 획으로 보인다.

남명은 청수역 역원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한유한 정여창 조지서를 ‘높은 봉우리 끝에 옥을 하나 올려놓은 격’이라 하여 군자 중에 군자로 존중하였다. 한유한은 악양에 터를 잡고 후학을 지도하고 취간림을 강조하였다. 남명은 후학을 지도할 후보지를 악양으로 하고 돌고 돌아 악양동천이 보이는 곳에서 돌아갔다. 그 고개길을 회남재 정자를 회남정(回南亭)으로 불린다. 한유한은 지금의 회남재를 넘었을까! 배를 이용하여 서해안을 거쳐 남해에서 섬진강 따라 악양으로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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