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섬진강하모니철교를 걷다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133

섬진강하모니철교를 걷다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섬진강대교 건너 송금교차로에서 핸들을 우로 돌려 대리마을 지나가면 다압면에 들어선다. 이름은 의미를 공유하고 오래토록 불리어 온 것이다. 

다압은 오리가 많다는 多鴨이다. 

鴨은 甲와 鳥의 합자, 甲은 밭(田)에서 초목의 싹이 껍질을 뒤집어쓰고 땅 위로 돋아나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甲은 껍질을 갑옷의 모양에 비겨 갑옷의 뜻, 갓 생겨난 싹이라 12지의 첫째로 쓰이고 있다. 오리 鴨에 甲을 쓴 것은 부리가 다른 새 보다 강하여 병에 걸리지 않는 체질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리는 우리의 생활과 오래 전부터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짝짓기를 하면 어느 한쪽이 먼저 죽어도 다른 짝을 만들지 않는다 해서 영원한 인연을 뜻하고, 새끼를 잘 돌봐서 가정의 평화와 부부 사이의 사랑을 상징한다. 

솟대는 새해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마을수호신의 상징으로 세운 긴 나무 장대이다. 삼한 시대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 조각이 있는 모습이다. 

지방에 따라 소줏대, 솔대, 별신대 등으로 불리며, 진또베기는 강원도 지방에서 솟대를 일컫는 방언이다.

솟대의 새는 주로 오리로 만들었는데 오리는 물위를 떠다니기 때문에 홍수가 나도 마을이 안전하며 불을 지르는 귀신도 마을 입구에 있는 오리를 보고 마을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여겼다.

압록강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물빛이 오리 머리 빛과 같이 푸른 색깔을 하고 있다 하여 압록(鴨綠)이라 하였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성의 별궁 터이다. 신라 멸망 후 방치되어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조선의 묵객들이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물 발굴에서 ‘월지’라고 불렸다고 확인되어 ‘동궁과 월지’로 변경하였다.

섬진강 남쪽 지역 다압면은 따뜻한 기운이 먼저 밀려온다. 다압의 섬진강에 오리들 복을 싣고 날아오고 매화가 피어난다. 매화마을은 전국에 알려지고 봄을 맞이하는 차량은 장사진을 이루며, 특히 지리산 골바람으로 강둑 안에 홍・백매화 어울려 일품이란다. 

강물이 나타난다. 다리 아래 운치 있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다리는 시멘트 교각에 철제 상판을 받치고 있다. 200년 된 보호수 팽나무의 다발가지가 물에 비치고 덩굴 얹은 가지는 상판에 근접되었다. 보호수 안내판은 상세하다. 위치는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관리자는 마을이장이다. 

수령은 지정된 날짜를 기준 한다고 되었다. 관리 보호를 과학적이라 신뢰감이 생긴다. 

다리에 올라보니 옛 하동역과 연결되던 1968년 개통된 철교이다. 터널 진입 목은 철조망으로 차단되었다. 새 하동역과 연결되는 섬진강철교와는 열려있다. 젊은 철마에게 임무를 인계한 것이다. 돌아서보니 두 가닥 레일이 그대로 남았고 사람이 왕래하게 메웠다. 철교 상판은 안전성과 기관사의 집중을 위하여 트러스를 구축하였다. 열차 운행이 오래 전에 멈춘 것을 트러스에 녹이 말해 주고 있다.

섬진강하모니철교라고 이름 하였다. 

하모니(harmony)는 미적 대상의 부분들이 성질이나 수량성에서 서로

모순이 없는 통일 관계를 맺어 쾌감을 낳는 것이다. 용도가 끝났다고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동송림과 섬진강 주변 경관을 걸으면서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활용하겠다는 하동군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바닥 군데군데 투명 아크릴을 깔아 발밑 섬진강을 볼 수 있고 좌우 난간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하동송림, 섬진교와 섬진강철교, 섬진강대교를 볼 수 있다. 바닥에 특이한 그림을 볼 수 있다. 파란 붉은 동심원 속에 북위 35도 03분, 동경 127도 44분이다. 이 수치는 지구를 가로 세로로 나눈 현 위치의 좌표를 말함이다. 

철교가 끝나는 지점에 문학수도 하동이라는 문을 세웠다. 기둥에 ‘해량촌 옛집(강남주)’를 새겼다. 

과객이라서 알 턱이 없을 텐데 나를 맞은 옛집은 스스로 허물어지기를 잠시 멈췄다. 자(尺)치기 하며 놀던 마당은 60년 이상을 좁아지기만 했고 숭숭 뚫린 양철 지붕과 헐벗은 벽은 내가 자라던 때의 그 속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늙으면서 낮아진 내 키보다 훨씬 낮아진 돌담 안에서 봉숭아만 아직껏 제자리를 지키며 허물어지지 않고 웃고 있었다. 내가 떠난 지 오래 된 해량촌 나의 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