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는,

기사입력 2023.11.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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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감기다. 누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앉아서 잠을 잘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쿠션을 가져다놓고 비스듬히 기대고 그러다 잠깐이라도 잘 수 있을지그러나 매번 실패다.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일정이 있다. 아이들을 만나거나 어른을 만나는 일, 성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각자 사연이 있고 각자 이유가 있다. 부모가 만들어준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 또 그 아이어른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힘든 아이들 등 문제는 문제를 안고 자꾸 커지고 자꾸 늘어난다.

    같은 부모아래 자라는 아이들도 부모를 받아들이는 게 달라서 각각 다른 사람들로 성장한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나는 성격적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게도 아들 둘이 있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첫째인 큰아이는 받는 사랑도 많았지만 기대도 컸고 고달프기도 했을 것이다. 부모도 처음인 우리가 욕심만으로 키운 아이, 착하고 어리석기만 한 아이에게 우리가 거는 기대는 큰 짐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그런 깨달음을 좀 더 일찍 얻었더라면

    몇 년 전, 손녀 교육문제로 며느리와 내여동생이 다툰 일이 있었다. 아들이 낳은 손녀 또한 첫 번째 자녀인지라 이런 보물이 어디서 왔나.’ 하고 다들 들여다보던 시절이었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정 식구들은 누구의 아이라도 사랑스러워하며 산다. 그러니 손녀가 태어났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손녀가 태어나던 날, 우리 세 자매는 경기도까지 달려갔다. 초록색 강보에 싸여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경 아래로 흐르던 눈물을 훔칠 생각도 없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의 말에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을 것이다. 철마다 음식이며 아이의 옷이며 장난감 등을 사주는 재미로 살던 동생이 아이들에 대한 한마디 말도 없었다. 아들이 여러 번 연락을 하여도 모른 척 하면서 제법 시간이 지났다. 마음이 아팠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기다렸다. 명절에 오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말이라도 다녀간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손녀의 손을 잡고 여동생 집으로 간다. 사업장을 겸하고 있는 여동생의 집은 어머니와 같은 동에 있다. 수업을 마친 시간이라 마침 아무도 없다. 그렇게 자기를 좋아하던 이모할머니랑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금방 달려가서 안긴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랴 싶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이것저것 이전처럼 물어보고 선물도 한아름 안겨준다. 치료실에는 여전히 신기한 기구들과 장난감들이 많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손녀는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침대로 소파로 그네로 옮겨 다니며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다. 마트에 간다던 아들 내외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이렇게 어설프지만 화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리 와 앉아라.’ 둘이 나란히 앉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한다. 조건 없이 베푸는 우리의 사랑이 의심스러웠다는 며느리의 말에 우리는 너무 놀랐다. 다른 속내가 있을 것이라고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고. 이 아이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 참 난감하기도 하다. 한 번 마음을 주면 지독하게 사랑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안간힘으로 버텨온 그 아이의 삶이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이의 부모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을까. 부모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호의적인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아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이모나 시댁 식구들의 마음들이 부담으로 느껴졌을까. 이웃이라도, 혹은 새로 알게 된 마음이 통하는 상대라면 아낌없이 베푸는 우리의 생활방식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던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얘야, 우리는 너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단다. 그저 우리에게 온 손녀가 너무도 귀한 사람이라서 그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란다.’ 몸도 마음도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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