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정서마을 기원

기사입력 2023.11.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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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악양 땅은 2000년 전부터 선인들 삶의 모습들이 동이열전(東夷列傳)과 위서(魏書)에 나타나고 삼한 변한(弁韓) 12국의 하나인 낙노국(樂奴國)의 도읍지라고 명기되어 있는 오랜 역사와 유서 깊은 고장이다.

    면사무소 옆 길목 돌 위에 자연석을 가로로 얹고 크고 깊게 정서마을이라 새기고 횐 물감으로 마감하였다. 기단에 ‘2019.5’이라 명기되었다. 회남재로 방향을 잡는다. 도로 우측 기단 위에 사각형으로 깎은 2개의 판석에 자연석을 앉히고 가로글씨로 정동마을로 새기고 기단석에 ‘201865일 건립이라 명기되었다.

    정동마을과 정서마을이라!” 이웃하는 마을끼리 은 공통이고 로 구분된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름은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쉬우며 뜻이 내포되어야 하겠다. 지명은 지형지물의 특성, 유래 등을 강조하였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대사처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인정받는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라는 동요 가사에 익숙하다. 태양이 이동하여 밤낮의 변화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도 일상생활에 아무렇지 않다. 악양을 중심으로 해가 뜨고 지는 가상의 선을 긋고 해 뜨는 쪽을 동쪽으로 지는 쪽을 서쪽으로 하고 있다. 바르다, 정당하다는 뜻을 가지고 으로 발음된다. 정동(正東)은 똑바른 동쪽. 정서(正西)는 똑바른 서쪽이다.

    화사별서(조씨고가)를 찾아가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도로변에 붉은 벽돌집이 있다. 처마 밑에 노란 물감을 먹인 나무 판에 검은 글씨로 亭東里老人亭(정동리노인정)이다. 그렇다면 이 아니고 이란 말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조금 더 올라가는데 커다란 새움 돌에 굵고 깊게 亭東園(정동원)을 새기고 흰색으로 마감하였다. 한글로 새겼다면 하동 출신 인기 소년 가수 정동원과 관련지어 보겠는데. 정자(亭子)를 기준으로 동서쪽 마을로 구분되었다. 그렇다면 기준점이 되는 정자는 어디에 있을까?

    상신마을 접어들어 주렁주렁 달린 대봉감 따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악양 땅에 들어 왔던 거지가 1년 만에 나간다는 말이 있던데요?” “아니라요! 하루에 한집씩 얻어먹고 1년 만에 나가는데 그래도 3집이 남았다 하지 않습니까. 반딧불도 볼 수 있답니다. 우리 마을에 터를 잡으세요!”

    화사별서 앞에 안내판이 있다. 상신마을 문화 탐방로. 상신마을은 악양면사무소에서 1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부계마을, 서로 주암마을, 남으로 정서마을과 정동마을, 북으로 노전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서마을 위쪽 지역에 잘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터몰(上新)’로 불린다. 정서리는 악양의 중심지이며 하동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이다. BC 5000년 금석병용시대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고 변한 때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의 심장이었다.

    은 높은 곳에 지어진 집또는 높이 지어진 집으로 정자나 초소의 뜻이고 음은 이다. 중국 글자 을 차용하면서 뜻과 음을 우리 것으로 옮긴 것이다. 초소로 해석하면 낙노국 궁궐의 동쪽 초소가 있던 지역을 정동리, 서쪽 초소 지역을 정서리로 불린 것이 아닐까!

    악양 취간림을 찾았다. 입구에 큰 돌을 세우고 비문이 있다. 취간림유래. 악양동천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악양천의 중간지점 취등(翠嶝)에 수구막역할(水口幕役割)을 하도록 조림하고 가꾸어 오면서 수려한 경관으로 다듬어졌으며 취간정(翠澗亭)이 건립된 이래 이 숲을 취간림(翠澗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정()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재일동포 홍갑동 옹()께서 사재로 팔경루(八景樓)建立 기부하여 면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었다. 2천년 삼림청 주관 생명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에 제일 먼저 우수상을 받은 아름다운 숲이다. 서기 이천사년 1월 일 소천 서. 세울 수로 뜻을 나타내는 과 음을 나타내는 수()의 합자이다.

    비문에 翠澗亭이 건립된 이래 이 숲을 翠澗林이라 부르게 되었다에서 취간정이 생기고 취간림이 되었다. 취간정은 악양의 기준점이며 亭東里亭西里로 구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옛 지명은 대부분을 한자로 표기되었다. 해방 이후 한글로 되어 읽을 수 있지만 뜻을 새기는 것은 어렵다. ‘정동리의 뜻을 해석하는 역할은 지역사람 몫이 아니겠는가. 한글 지명에 한자를 병기하던지 유래를 요약한 안내판 설치는 의미 있는 친절이며 지나는 나그네 뜻과 음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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