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짧은 기린 지피

기사입력 2023.11.0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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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뮤지컬 목 짧은 기린 지피아니 가족 뮤지컬이라고 적혀 있었지. 손녀 희연이가 온다는 주말에 마침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가족 뮤지컬 공연이 있다 길래 선뜻 약속을 했다. 후배 손녀랑 할머니 둘이랑 같이 가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아들 가족이 온다던 주중에 처가에 초상이 나서 아이들이 올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후배 손녀는 어려서 혹 관람이 어려우면 데리고 나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혼자 가기는 부담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 어린이 뮤지컬을 보는 재미도 괜찮을 것 같아서 가기로 작정을 했다. 손녀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으로 갔다.

    제목이 미리 보여주는 것은 결핍이다. 기린의 특징 중 가장 큰 특징은 목이 길다는 것인데 목 짧은 기린이라고 한다. 높은 곳의 과일도 따먹지 못하고, 먼 데서 오는 적을 볼 수도 없어 일상이 괴로울 것이 뻔하다.

    내 손녀 희연이는 키가 작다. 며느리가 키가 작은 편이어서인지 또래에 비해 작은 편이다. 요즘처럼 키 큰 아이들이 많은 시대에 키가 그 아이의 고민거리가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늘 이 공연을 함께 보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나누고 싶었는데

    후배는 내손녀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간이 되면 들어가자고 한다. 활달하고 어린 손녀가 공연 전 여기저기 달아날까 걱정이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주를 이룬다. 혹 엄마 혼자 아이랑, 아빠 혼자 아이랑 온 경우도 많다. 할머니랑 온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공연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자리를 찾아 앉았고 극이 시작되자 시끄럽던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공연은 엄마 기린 미야가 지피를 낳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여느 기린과 다르게 목이 짧지만 엄마 기린은 그 아이를 정말 사랑스러워 한다. 주변의 질타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엄마 기린이 따다주는 나뭇잎이나 과일 등을 받아먹으면서 살지만 지피의 꿈은 변함없이 보초기린이 되어 마을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 지피의 꿈은 모든 기린들의 비웃음을 샀고 친구가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때 나타난 호피무늬를 한 얼룩말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처지의 목 짧은 기린 지피와 호피무늬를 한 얼룩말 통가는 서로를 위로하며 친구가 된다. 또한 공연을 보는 아이들도 극중으로 들어가 지피를 격려하고 지피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 무렵 평화롭던 초원에 사냥꾼이 나타난다. 목이 긴 보초기린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마을은 비상사태가 되었고 새로운 보초기린이 필요할 때 지피는 자진해서 보초기린이 된다. 키가 작은 지피는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냥꾼의 발을 먼저 보았고, 마을을 지킬 수 있었다. 지피가 큰일을 해냈을 때 공연을 보는 아이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함성을 지르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공연장이 떠나도록 신이 나서 들썩거렸다. 우리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행복한 표정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더 좋은 구경꺼리였다.

    오늘 함께 이 공연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초등학교 1학년이고 나름대로 야무지고 똑똑한 편이지만, 나이가 들고 자라야할 키가 자라지 않으면 고민하고 힘들어 할까 미리 염려가 된다. 오늘 본 한 편의 뮤지컬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좋은 공연을 보거나 체험을 해보는 건 간접적인 교훈이다. 어른들의 입으로 하는 말은 아이들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겠지만, 이야기를 통한 극 중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 직접 느껴보는 일은 아이들에겐 가능한 일이다. 공연 내내 지피의 편을 들며 사냥꾼의 위치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박수를 쳐주기도 하면서 몰입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공연장은 관람객 모두가 참여하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관람객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되어 덩달아 즐거웠다. 가을이 점점 내게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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