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다

기사입력 2023.10.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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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라는 말은 누군가에겐 성스런 이름이요, 웃어른으로 아들이나 딸을 가진 남자이다.

    고난의 시대 일제 강점기에 메마른 땅 시골에서 6남매를 키워주신 나의 부모님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시고, 열심히 농사 지으며 오직 가족 먹여 살리기에 혼신을 다하신 부모님!

    그 분들의 희생 위에 꽃 핀 희망인 우리 6남매-각자 주어진 삶을 살면서도 부모님 제삿날에는 함께 모여 부모님을 추억하며 감사 올렸고, 부모님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자식이 되자고 다짐했었다.

    이런 6남매들도 어느새 자식 가진 부모가 되었다.

    나는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자랐고, 운 좋게도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교사로 재직 중 결혼하였으며 곧이어 장남을 낳으면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2남 1녀의 아버지다.

    준비 안 된 아버지이지만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보면 괜히 신났고, 같이 놀면서 재롱을 더해 웃음 있는 행복 속을 거닐었다.

    장남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밖에서 놀다 집에 오는데 한쪽 다리를 절어 깜짝 놀랐었다. 무혈성괴사'라는 병이었다. 북천에서 진주까지 먼 길 달려 정형외과병원에 입원하니 하반신을 깁스해 주었다.

    6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아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했고, 다시 1년 후 서울 한국병원에서 수술로 완치했다. 자식이 병나면 슬퍼하기 전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 뒤 장남의 고3때 교육방송을 밤 12시까지 들으며 같이 공부했던 게 효과가 있었던지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행운도 얻었다. 차남과 장녀도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결혼하여 그들도 부모가 되었다.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산 지 5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은 좀 더 잘 키웠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요즈음은 자식들이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해 주는 게 싫지 않지만 아버지

    로서의 체통을 지켜가며 인생의 지혜와 삶의 가치를 가르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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