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별서(Ⅰ)

기사입력 2023.10.1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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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악양 상신마을로 길을 잡았다. 머리가 지면에 닿을 듯 걷다가 무언가에 끌려 고개를 드니 5개 장승이 버티고 섰다. 뒤쪽으로 사모관대를 쓰고 위아래 이빨 사이에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웃고 있는 신랑은 긴장이 역력하다. 족두리 쓰고 긴 비녀를 꽂은 신부 역시 이빨이 보일 정도로 웃지만 표정 관리를 하는 듯하다. 앞줄 가운데 입술은 앙다물고 눈을 아래로 깔고 의기양양한 매파의 모습이고, 좌우에는 주먹코에 왕방울 눈으로 주위를 살피면서도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여유를 보이는 길잡이 장정들이다.

    정자나무 앞 자연석에 상신마을그리고 기단에 정겹고 풍요로운 고장을 새겼고 뒤에는 이름을 기다리는 정자가 있다. 전봇대에 하동천문대라는 이정표가 걸렸다. 매연이 없고 하늘이 맑아 하늘의 별과 반딧불도 불 수 있는 청정지역임을 알게 한다.

    동네가 나온다. 우로는 온통 감나무 밭이다. 가지가 땅에 닿게 하는 대봉감을 수확하는 손길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마당의 감은 대처로 나가 있는 아들딸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순위에서 밀렸는지 집은 조용하다. 턱을 땅에 깔고 잠이 들었던 개가 컹컹소리 내며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집에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파란색 대문 기둥에 도로명 주소 안내판을 내걸고 옆에 빨간 지붕의 우체통이 있고 그 아래 화이트보드에 주인의 캐리커처와 성명을 적었다. 남자는 넥타이를 매고 머리는 2:8로 넘겼고 여자는 파마 스타일이다. 신기하고 친밀감이 간다. 하나의 사물에 문자로서 표현은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림은 간단하면서 공통의 표현이다. 이처럼 독창적으로 주인을 알리는 마을을 어디서 보겠는가.

    뒤따라오던 젊은이가 지나가는지라 우체통을 가리키면서 마을에 특색이 많군요?”“, 잘 오셨습니다. 볼거리가 많답니다!” 간단명료하면서 얼굴과 말에서 위엄과 기품이 넘친다. 젊은이는 빨갛고 감색 배낭을 메고 검은색 반팔 티에 검은 바지를 입었는데 걸음걸이는 빠르면서 안정되었다.

    까장내 170m’ 이정표! 귀에 익고 어색하지 않았을 까장내를 되새이면서 길 건너 안내판에 긴장된다. 상신마을 문화 탐방로. 상신 마을은 악양면사무소에서 1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으로 부계마을, 서로 주암마을, 남으로 정서마을과 정동마을, 북으로 노전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서마을의 위쪽 지역에 잘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새터몰(上新)’로 불린다. 정서리는 악양의 중심지이며 하동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마을이다. BC 5000년 금석병용 시대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고, 삼한시대 변한 때 악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낙노국(樂奴國)의 심장이었다. 1633년에는 상촌, 성지촌(城祉村) 혹은 성후촌(城後村)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원정서(原亭西), 상신, 주암(周庵), 성덕(城德)을 합쳐 정서리(亭西里)로 되었고 지금은 상신과 정서로 구성되었다. 대표적 문화유적은 화사별서(조씨고가)와 동곡재가 있고 의병대장 임봉구의 기록이 전해진다. 亭西里의 정서(亭西)는 어디에 있던 정자(亭子)의 서쪽에 있는 지명일까?

    왼쪽으로 논이고 마을길을 조금 오르자 활짝 열려진 대문 앞이다. 동쪽으로 방위를 잡은 대문은 짐을 가득 실은 수레가 들락날락할 수 있겠다. 대문 안벽에 위로부터 정동상신길 73-13, 파란색 우체통 아래 화이트보드에 집을 그렸고 상단에는 조한승이다. 솔방울 모양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계단식 담장 안에 ㄱ형 안채와 ㅡ자형 행랑채가 있다. 안채의 정면은 자형 지붕이고 옆면은 높다란 용마루 아래는 삼각형이다. 담장 아래 넓은 공터는 사랑채 터이고 소나무 5그루를 그렸고 축담 아래는 거대한 바위가 놓였다.

    대문을 지나 담벽 밑에 세워진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조씨고가(趙氏古家). 조선 개국공신 조준(趙浚, 1346-1405, 본 평양)의 직계 손 조재희가 낙향하여 지었다. 16년 걸려 건축되었고 조부자집으로 알려져 있다. 동학혁명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랑채와 남자 행랑채, 후원에 별당, 사당 등이 불타고 안채와 방지(方池)만이 남아 옛 영화의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이집은 박경리 장편소설 토지의 최참판댁 실제 모델이 되었다.

    담 밑에 두 길 넘게 비스듬히 땅을 파고 안쪽으로 다듬어진 돌을 쌓고 한 사람 다니게 여유를 두고 물을 담았다. 연못 가운데에 원형으로 섬을 조성하고 가운데 백일홍이 만발하였다. 왜 사각형 연못이며 원형 섬일까? 내려다보며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마침내 여기까지 오셨군요!”길에서 만났던 그 젊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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