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간림(Ⅱ)

기사입력 2023.09.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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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한 아름 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마다 눈높이 몸통에 두 개씩의 설명판을 가느다란 용수철 띠로 고정되어 있다. 하나는 번호표 또 하나는 나무이름과 설명을 적었다. 띠를 용수철로 한 것이 인상적이다. 철사를 사용한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부피와 길이 자람을 하는데 제때 교체가 되지 않으면 몸통에 상처가 생긴다. 나무가 말을 한다면 고통을 호소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헤아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취간림에 용수철을 띠로 사용한 것을 보면서 악양사람들의 나무를 위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관리번호 〈하동 악양 취간림 109〉. 설명판에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와 비슷하지만 잎 가장자리 바늘모양 톱니에 엽록소가 없어 희게 보이고 잎 뒷면이 노란 녹색을 띤다. 임진왜란 때 피난 간 선조가 상수리나무 열매로 쑨 묵을 좋아하여 항상 수라상에 올라 상수리나무라 한다〉 톱니가 희게 보이는 이유를 알게 되고 선조의 수라상에 올라 상수리나무란다.

    취간림은 200여년전 악양천 모래톱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왕버들나무 숲을 비롯하여 마을 주민들의 기념식수를 통해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7000제곱미터 면적에 120분의 수종이 자라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며 다양한 마을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8개 기둥으로 멋을 부린 팔각지붕이다. 기둥 마다 주련을 걸었다. 취간림과 주변 경관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초서체 한자로 쓰여 읽고 뜻을 새길 수 없으니 그림으로 감상하고 화려한 채색에 눈이 호강한다.

    안쪽 처마 밑에 현판이 있다. 〈기증서. 팔경루(八景樓)는 면민의 휴식과 정서함양에 활용하도록 악양 면민에게 기증함 1993.3.25. 홍갑동〉 기증자 일본 주소도 첨부되었다.

    위쪽 중앙에 지리산항일투사기념탑, 왼쪽으로 충혼탑, 오른쪽에 평화의 탑과 청학정이 있다.

    〈지리산항일투사기념탑 비문. 누가 이 땅 지리산에 사람이 없다 하랴 누가 하동군 악양 땅에 의인이 없다 하랴 초토화된 망국의 이 나라 상투머리는 쇠풀처럼 베어지고 빼앗긴 들녘에 까마귀 울음만 성성한데 정녕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지고지순한 목숨 더럽힐 수가 있겠느냐 마침내 의로운 백성들이 일어섰으니 대피리는 서슬 퍼런 죽창이 되었다. 주름진 이마에 분노의 수건을 두르고 부황 든 깃발, 피 묻은 깃발을 펄럭이며 대한독립만세! 결사항전의 북소리가 울렸다. 위로는 푸르디 푸른 하늘을 이고 아래로는 더 깊이 뿌리를 박으며 이 나라 금수강산 지리산을 되찾았으니 누가 이 땅에 의로운 사람이 없다 하랴 바로 이 자리에 그 정신의 골격을 세운다. 2008년 광복63주년 9월6일 글 시인 이인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 비석 〈항일투사 약사〉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 의병장 임봉구(1880-1908.7.27 하동군 악양면)이다.

    임봉구는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1907년부터 지리산 일대에서 박매지(박인환) 의병장과 함께 청년 500여명을 규합하여 의병대를 독자적으로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펼쳤다. 특히 그는 1908년 7월 24일 양보면에 소재한 일어학교를 방화 전소시키고 일진회원 다수를 처단했다. 그러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하동경찰서 유치장에서 고문으로 28세의 나이에 옥사했다(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의병장 임봉구는 정식재판도 받지 못한 채 4일 동안 혹독한 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일본의 풍신수길은 조선 국왕을 잡으면 끝이라는 판단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선조는 부랴부랴 의주로 피신하면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여차하면 명나라로 넘어갈 작정이다.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은 후퇴하면서 많은 문화재를 불태우고 약탈하며 도공 및 포로들을 끌고 간다. 그중에 임해군 아들과 양보 보현암에서 공부하던 여대남은 일본에서 일연・일요스님으로 만나지만 귀국하지 못한다. 가깝게는 1900년대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 의병 정신으로 뭉친 대한인은 일제의 노예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의병장 임봉구는 28세에 의를 위하여 순국하였다. 대한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옥사한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추모해야 하겠다. 비문은 한글로 되어 읽을 수 있지만 글자 사이에 먼지를 털어내고 주변을 청소하자.

     평화의 탑 옆에 청학정(靑鶴亭)이 있다. ‘악양국악회 사무소’라는 주련이 걸렸고 근처에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 명창 유성준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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