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기사입력 2023.09.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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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숙(시인/상담사)

    연극이 끝난 무대를 바라본다. ‘그 여자가 행복했을까요?’ 극중 진행자가 관객을 위해 묻는다. 티켓을 받으면서 함께 받은 하트가 그려진 종이를 사용할 때가 되었나보다. 한쪽은 빨간색 하트 그 반대쪽은 검은색 하트가 A4 반절 크기의 종이에 가득하다.

    좋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하였다. 온 마음을 바쳐, 아니 온 생애를 바쳐 그 남자를 사랑하였다. 그 사랑으로 그 여자는 행복했을까. 같이 간 우리는 빨간색 하트를 들었다. 그렇게 약속한 것도 서로에게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그 여자의 사랑이 눈물겹도록 슬펐지만 그래도 그건 사랑이었다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을까. 지금이 아니라면 과거 그 어느 순간 그 여자처럼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 그런 사랑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시절 행복했을까. 많은 생각으로 저녁이 가득하다. 예술회관을 나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의문 부호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질문은 우리에게 하나의 고정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깊고 넓은 생각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림책의 한 페이지를 놓고 수 십 개의 질문을 만들어 보던 수업이 생각난다. 똑 같은 그림 한 페이지를 열고 얼마나 많은 질문들이 오고갔는지 모른다. 질문으로 소통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경험하였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한 열악한 수업 환경이었지만 마음을 열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또 생각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의 연극 의자 고치는 여자의 관람이 더 좋았던 이유는 마지막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대 장치도 그 흐름도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지만 그보다 우리를 향해 던졌던 그 질문만큼 자극적이진 못했다.

    무대로 올라간 몇 명의 관객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 했다. 그 여자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이유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말했다. ‘저런 이유로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한다. 그 의견을 존중해 줄 수 있지만 내 의견은 그들과 다를 수도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 후 함께 하는 저녁자리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의 한 부분을 훔쳐 본 듯한 느낌, 그 흥분된 마음은 한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각자의 인생이 연극보다 극적이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가슴에 가득 담겨 있는 아픔과 절망들이 그래도 가끔 이런 기회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춘기 아이의 달라진 행동들이 걱정스러워 나를 찾아온 엄마를 만난다. 가르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엄마가 안타깝기도 하다. 자신의 생활은 없고 오로지 아이들을 향해 있는 부모님들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조금 떨어져 바라봐주시라고, 좋은 질문으로 아이들의 많은 생각들을 이끌어내어 보시라고. 그리고 나에게 물어볼 오늘의 좋은 질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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