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기사입력 2023.09.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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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숙 (시인/상담사)

    노란 수세미 꽃이 여기저기 등불을 밝힌다. 이 계절 꽃으로 제법이다. ‘나는 수세미 꽃이 예쁘더라.’ 고 말하던 친구가 생각나 사진으로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줄로 만든 어설픈 울타리를 타고 가더니, 잡초 가득한 밭고랑을 지나 끝없이 길을 만들고 있다.

    해마다 수세미 모종을 사다 울타리 근처에 심는다. 잊지 않고 수세미 차를 만드시는 어머니를 위해서이다.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의 기침이 어릴 때 앓은 백일기침을 고치지 못한 고질병이라 여기신다. 한편으로 그 병을 고치지 못한 것을 당신 탓이라 여기시는 것도 같다. 다행히 수세미차가 기침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시골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 잊어버리지 않고 봄마다 수세미를 심는다.

    올해는 유난히 줄기만 무성하고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 작은 아이에게 눈에 보이는 하나라도 할머니께 갖다 드리라 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밭에는 잡초가 반이다. 너무 더운 날은 피해가며 아침저녁으로 잡초를 뽑지만 그 속도는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자주 뽑으면 연해서 작업하는데 힘은 덜 든다. 표면엔 5%의 잡초만 보이고 나머지는 올라올 준비 중이라고 하니 잡초와 싸우는 일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9월이 오자 아침기온은 조금 달라진 듯하다. 무장을 하고 밭에 들어가 낫으로 잡초를 베기 시작한다. 고추대도 뽑는다. 토마토 줄기도 걷는다. 토마토 뿌리도 뽑는다. 흙이 드러난다. 속이 후련하다. 잡초 속에 숨어 있던 커다란 수세미 하나가 낫에 베일 뻔했다. 소문도 내지 못하고 엄청 커져 있었다. 반가웠다. 좋아하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밭에서 찾은 커다란 수세미 하나와 울타리에 자라도록 기다린 두 개의 수세미를 따서 어머니에게 간다. 나에게 수세미는 노란 꽃과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있다. ‘내가 수세미를 반가워하니 여기 오는 요양보호사가 내년엔 자기도 심어본단다. 요즘엔 시장에도 나오는 게 없어.’ 하시며 덧붙이는데 그 말씀이 서운하다. ‘너거 집엔 씨앗이 떨어져 해마다 나겠지. 씨앗 좀 갖다 주렴.’ 씨앗을 만들 열매를 남길 여유도 없이 열심히 따다 드렸다. 연할 때 잘라서 말리거나 설탕에 절여서 차를 만들기 때문에.

    할머니가 된 지금도 내 성의를 알아주지 못하는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미숙함 때문일까 칭찬에 대한 욕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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