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짙은 안개 속에서 조업하던 100톤급 어선이 여수에서 기름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던 430톤급 유조선 선미 부분을 들이받아 약 150드럼의 벙커C유가 흘러나와 조류를 타고 남해안 섬 주변 바위들은 시꺼멓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사고가 나자 사고해역 일대에 유화제를 살포하는 등 기름 제거 작업을 하였으나 확산 면적이 넓어 많은 사람이 기름 제거 작업에 참여했다.
하동군에서도 실과별로 조를 짜서 순차적으로 기름제거 작업 지원에 나섰는데 산림과와 사회복지과가 한 조가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내일은 우리 과와 산림과에서 기름 제거 현장으로 가는 날이니 주무 계에서 도시락을 가지고 전 직원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필지가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으나 깜빡하고 빈손으로 출근하고 보니 큰일 났다 싶었다. 30분 후 군청 버스로 출발하는데 “빵이라도 사야 하나” 하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산림과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과에서 두 사람이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많이 남는데 사회과에서 이웃돕기에 보내주면 좋겠다는 부탁 전화였다.
그래 “이 좋은 세상에 굶어 죽어라는 법은 없지” 하면서 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의기양양하게 빈손으로 직원들 앞에 나섰다.
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본 직원들은 도시락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원하는 대로 드실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걱정말라고 해 놓고 군청 버스가 노량 부둣가에 도착하자마자 부두 주변 가게로 달려가서 나무젓가락 한 다발을 사서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게 오늘 점심이니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맘껏 드시라고 하자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장난이겠지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나 젓가락만 나눠주고 도시락을 나눠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불안한 기운이 돌 무렵 산림과 여직원이 도시락을 가져와 “맛있게 드십시오” 하면서 내려놓았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 한 팀은 직원 수보다 2배나 많은 도시락 준비했는데, 필자는 나무젓가락만 나누어 주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산림과 직원이 필자에게 고맙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한 순간이었고 황당한 이야기지만 세상사란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때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도시락 준비는 필자가 최고라고 웃으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