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의 유(維)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10.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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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세차의 유(維)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일생은 세상에 태어나서 숨 쉬고 활동이 멈추는 기간을 말한다. 사람마다 태어나는 시점이 다르지만 생일은 하루 단위로 하고 있다. 태어남은 순서가 있어 형과 동생의 관계가 되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으니 동생이 형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는 생사의 법칙을 알지만, 사람은 그날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멀리하고 꺼린다는 뜻의 忌와 日을 사용하여 기일(忌日)이라 한다.  

     생일은 지인이 모여 축하하며 보내지만 어린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한 해가 되는 날을 돌이라 하여 특별하게 축복하며 행사를 곁들이고 있다. 돌잔치를 태어난 시점에 시작하기 보다는 축하객이 모이기 수월한 이른 아침이나 일과 후에 집이나 식당 등에서 열린다. 

     돌상에 장수를 기원하는 백설기와 실타래 또는 재물을 상징하는 돈이나 곡식 또는 책, 스마트 폰, 골프공 등을 펼쳐 놓고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장래를 좁혀보며 즐겁게 보낸다. 

     기일에는 어떤 행사가 있는가. 고인을 추모하는 기제사(忌祭祀)이다. 

     기제사는 본격적으로 조선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는 농경시대라 절기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리고 모내기나 추수하는 작업에 많은 일손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대가족 생활을 하게 되었고 품앗이를 통한 이웃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한다. 가족 간의 질서는 효를 기본으로 유지되었는데 제사를 통하여 실천되었다. 제례가 끝나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어른들을 대접하는 풍습은 마을의 화목을 돈독하게 하였다.

     기일을 앞두고 가족 친척들은 제수를 준비하여 큰 집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저녁에는 고인에 대한 회고담에 집안 대소사 의논과 자녀 교육 및 정보교환을 하다 자정 지나 절차에 따라 거행되는데 제사를 기일 새벽 첫닭이 울기 이전에 모신다. 이 시간대가 음기가 강하여 신이 활동하기 좋고 가장 맑은 때라는 의미이다.

     요즘은 노동력 집약적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천하였다. 저출산으로 제객이 급감되었고 직장 따라 생활하기에 모이기 어렵다. 새벽에 제사를 지내면 진설에서 음복하고 제기를 정리하기까지 소수의 인력으로 긴 시간이 소요되며 새벽 운전 등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근무가 힘들다. 제사 모시는 시점의 조정은 시대적 요청이라 할 것이다.  

     퇴계이황의 종가는 기일 새벽에 지내던 불천위 제사를 오후 6시로 전환하기로 했다. 문중운영위에서 퇴계선생의 그 시대 풍속을 따르라는 가르침에 따라 제사 간소화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예법을 정립한 분이 퇴계 인데 종가가 이를 저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던 일부 위원도 시대의 흐름에 따르겠다고 하여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기제사에 유세차(維歲次)로 시작되는 축문으로 본격적으로 거행된다. 

    낭랑한 목소리로 ‘유~세차’하면서 維를 유별하게 길게 늘인다. 

     ‘維歲次’는 이해의 차례라는 뜻으로 제문의 첫머리에 관용적으로 쓰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歲次는 간지(干支)에 따라 정한 해의 차례이다. 육십갑자를 써서 연도를 표시하므로 60년이 지나면 다시 같은 갑자로 돌아오게 된다. 고인의 돌아간 햇수는 무한히 나열되는 것이다. 

     유~의 ‘~’ 부분은 황제가 즉위한 해에 붙이던 칭호 즉 연호를 사용하여왔다. 연호가 사라진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명나라 연호를 사용하다가 명(明)을 멸망시킨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할 수 없어 연호를 생략하고 ‘세차’로 넘어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 6월 12일 1번째 기사. 

    대행왕후를 광릉에 장사지내다. 

    維成化十九年歲次癸卯三月壬戌 大行大王大妃薨于溫陽之行宮(유세차 성화 19년계묘 3월 임술에 대행대왕대비가 온양의 행궁에서 훙하셨으므로…). 명나라 8대 황제(1454-1487)의 이름은 주견심, 연호는 성화, 시호는 헌종이다.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로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維光武○○年’이 되었다. 현재는 연호가 없어 유세차를 묶어 독축하는데 구분하기 위하여 유~로 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의 제사는 제객이 모이기 수월한 시간대에 모시면서 간지와 연호를 구분하여 사용하던 왕조시대에 생겨난 연호를 뛰어넘고 유~세차로 하고 있다. 維 다음의 ‘~’의 용도는 문화의 흐름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歲次만의 축문은 부족하다. 오늘날에 맞는 년도 사용 및 보완 방안에 대하여 열린 토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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