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그리고 정두수 생가터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기사입력 2021.09.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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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주 그리고 정두수 생가터

     

    안명영 (전 하동고 교장)

     

    하동은 산천이 빼어나 인물이 많고 물산이 풍부하여 이웃 간에 정이 두텁다. 하동에서 태어나 고향을 떠난 사람도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다. 

    문학으로 하동을 널리 알린 사람이 많다. 그 중에 이병주(1921~1992)와 정두수(1937~2016)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금년은 작가 이병주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작가 이병주의 태어난 마을을 소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소설 지리산은 일제 말기에서 빨치산 토벌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좌우 사상의 혼란과 남북 대결의 암흑기에 박태영 등이 학병을 피해 함양 괘관산에 숨어들어 생활하다가 지리산으로 무대를 옮겨 빨치산이 되고 토벌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설 속의 이규로 등장하는데 박태영의 친구이고 해설자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끈다. 이규의 집안 내력을 보자.

    이규의 일가가 할아버지대로부터 살았다는 영옥정(永玉亭)이란 마을은 행정구역의 변동으로 하동군에 편입되어 있지만, 할아버지 생시에 대야면으로 진주에 속해 있었다. 그렇다면 군계까지 넘고 산길 수 십리를 기어올라 기어이 지리산 속에 묻혀야했다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지리산 1권, 잃어버린 계절).

    박태영이 조복애와 옥종으로 보급 투쟁 나왔다가 이규를 회고한다. 

    “내 친구로 이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집이 월횡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그 집안은 백토재를 넘는 곳에 있지요.” 

    보급 투쟁 나간 곳은 옥종면 북방리 어느 마을이었다. 

    태영은 대원 하나를 망을 보게 어둠 속에 남겨두고 솟을대문이 있는 꽤 부자로 보이는 집으로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방 책상 위에 놓인 사진 속에 눈 익은 사람이 있었다. 분명히 이규였다. 동경제국 대학 시절의 사진이었다. 

    “이규의 사진이 여기에…!” 하다가 ‘북방에서 등하나 넘으면 이규의 고향이다’라는 생각이 미쳤다(지리산 7권, 추풍 산하에 불다).

    정리하면, 작가 이병주의 고향은 황토재를 내려가 북천면사무소를 지나 삼거리에서 옥종으로 방향을 잡으면 빙옥마을이 나오고 입구에 빙옥정(氷玉亭)이 있다. 작가는 이규의 선친이 살았다는 永玉亭 마을을 氷玉亭에서 차용하였는데 氷을 永으로 대치한 것이다.

    백토재 아래 화정과 빙옥을 연결하고 북방에서 안남골의 연장선이 만나는 지점이 남포마을인데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태어난 동네로 추정된다. 

    고전면 배다리공원의 고하교를 건너 신덕마을에 있는 왕비샘 뒤로 호젓한 고개 길에 성평마을 0.95km이라는 알림판이 기다리고 있다. 논길을 시멘포장을 하고 붉은 페인트로 바닥에 그림이 있다. 촌로가 고삐를 당기고 소는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성평마을에서 정두수는 태어났다. 

    그는 하동포구 아가씨, 시오리 솔밭길, 하동으로 오세요, 흑산도아가씨, 덕수궁 돌담길, 감나무골, 공항의 이별, 우수, 가슴 아프게 등 3,500여 편의 노래시를 발표한다. 그는 유행가 가사라고 하지 않고 노래시라고 하였다. 

    노래시인 정두수는 하동과 고향을 사랑하여 한려수도·섬진강·지리산을 삼포(三浦)라하고 三浦가 알처럼 품은 고전면 성평리가 고향이라 호를 삼포(三抱)라고 한다. 

    그는 ‘물레방아 도는데’라는 노래시를 쓴다. ‘돌담길 돌아서며~’라는 노래 말에 실려 그의 동네 ‘돌담길’은 전국 돌담길이 되었다. 이름마저 성평 돌담길이다. 

    그런데 60년대 주교천 둑 공사에 자갈 망태를 사용하자 돌담길의 돌을 쓸어 담았고 블록 담으로 교체되었다. 겨우 영모제 담에만 원형이 남아 있다.

    세월 따라 골목길은 넓어지고 시멘트를 깔았다. 돌담은 사리지고 없건만 노래는 사람과 함께 하니 ‘돌담길 돌아서며…’하는 가사는 변함없으리니.

    성평리 돌담길 30번길 주인장 정동원씨는 정두수가 태어난 터가 확실하며 정두수 가요제에 참석했던 몇몇 가수를 군청에서 소개하여 1박하였다고 한다. 

    이벙주 그리고 정두수의 생가 터에 새김돌 하나 세우는 것도 하동을 전국적으로 알린 업적을 알리고 그들의 문학세계에 접근하는 계기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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