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최영욱(시인, 평사리문학관장)

기사입력 2009.05.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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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계절이다. 가뭄으로 목말라 있던 반도에 농사철이 다가오자 적당한 비까지 내려 말라있던 평사리 무딤이들의 우리밀이 더욱 노오랗게 익더니 지금 밀수확이 한창이다. 그 밀을 수확하는 콤바인 뒤를 이름을 알 수 없는 왜가리과의 새들이 종종걸음으로 뒤따르고 수확이 끝난 논의 가장자리에는 못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물을 가뒀다. 비로소 옛적 보릿고개가 끝나는 시점이다. 그래서 더 좋은 계절이다.
    오동꽃 지니 아카시아, 때죽나무, 층층나무들이 소복의 색으로 꽃들을 피워 세상을 더욱 깨끗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어쩌면 죽기에도 좋은 계절이 될 것도 같지만 평사리 어느 어머니는 봄에는 절대 죽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살아서 못 먹은 음식들 죽어서나마 한 상 그득하게 받을 수 있게 가을 추수가 끝나면 그때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
    쓰린 괴로움을 말로 차마 못하시고
    베었던 옷고름을 풀고 가슴 내어 뵈더이다.

                         가람 이병기의 <젖> 부분

    오빠에게 양보하고 남동생에게 조차 치이고 치여 오빠를 위해 남동생을 위해 혹은 온 식구들의 입을 위해 자신을 희생 시켜 오늘 우리들의 배고픔을 없앤 이 땅의 수없는 누이들, 아니 어머니들, 5월은 그렇다. 아니 단 5월 만이래도 그래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이해하시라. 5월 이 한 달 만이래도 그래야 한다.
    이젠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신 그 옛날의 누이들. 그 누이들 아니 어머니들 역시 자식들을 위해 오늘도 비손에 여념이 없으리라.

    마흔 해 손 한 번 씻겨 드리지 못했는데
    아들의 등을 미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
    병에서 삶으로 돌아온 내 등을 밀며 우신다

    발가벗고 제 어미를 울리는 불혹의 불효
    뼈까지 드러난 몸에 살과 피가 다시 돌아
    어머니의 손길에 웃는 아이가 되고 싶다

    까르르 웃는 아이가 되고 싶다

                     정일근의 <목욕을 하며> 부분

    두 번에 걸친 뇌수술을 받은 시인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눈물로 아들의 모습을 맞이하는 어머니, 그 아들을 등을 밀며 우신다. 허나 그 울음은 소리가 되지 못한 흐느낌, 어머니에게 맨 몸을 맡긴 마흔의 아들 그 역시 운다. 그 울음은 반성이다. 마흔을 넘길 때까지도 어머니 손 한 번 제대로 씻겨드린 적 없는 자신의 불효에 대한 울음이면서 온전하게 받고서도 소홀히 간수한 자신의 막삶에 대한 후회이기도 하리라. 필자 또한 이 작품을 읽고 졸작 하나를 만들었다.

    생일날 아침 오래 부리던 이 하날 뽑았다
    상처에서 자꾸만 삐져나오는 핏물을 뱉어내고
    있는 내 꼴을 보시 어머니
    “쯔쯧 낼모레 여든인 나도 아직 멀쩡한데”
    하시며 수십 번 혀를 찬다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나도 따라 혀를 찬다

    온전하게 받고서 소홀히 간수한 것도
    불효의 한 대목이 된다는 것을
    쉰을 넘기고서야 알았다.

                         졸시 <불효>부분

    마흔, 쉰, 예순을 넘겨도 아들은 아들, 어머닌 어머니 이 공식은 뜨겁다. 이 뜨거운 공식의 최대 약점은 일방적이라는 데 있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들 걱정 딸 걱정에 젖을 내보이시는 어머니나 병원에서 돌아온 자식의 앙상한 등을 미시는 어머니나 자식의 몸에서 빠져나간 치아 하나에도 걱정하시는 어머니. 그 어머니들이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들이시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오신대두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전문

    이웃 광양출신의 아동문학가 정채봉 선생은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위한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 온 이 나라 대표적 아동문학가였다. 이 작품 역시 우리로부터 소외 받는 어린이를 위하여 쓰인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어 그 대상이 어린이 만이겠는가.
    효도를 해야 한다는 명분적, 의무적 총론보다는 어떻게, 뭘 해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적인 각론이 훨씬 중요하다 할 것이다. 즉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지금 즉시 가자 어머님들이 계신 곳으로 가자. 까만 비닐봉지 어머님이 좋아 하시는 막걸리 한 병, 사과 하나, 귤 하나라도 싸들고 그곳으로 가자. 혹여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으시면 산소는 더욱 좋겠다.
    우리 모두 어머니께로 가자
    가서
    살면서 억울했던 일 꼭 하나만 일러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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