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茶 茶 혹은 차 차 차 - 최영욱(시인, 평사리문학관장)

기사입력 2009.04.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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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일이 참으로 팍팍하게 돈다. 물론 돈다는 것은 세월의 감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그 지나는 시간이 수월치 않고 힘들고 모질다는 말이 팍팍하고 어지럽고 너무 지저분하다는 데 우리들의 울분이 터져 나오는 것일 게다. 그러나 세상일이 힘들고 팍팍하게 돌아간다 하여 계절이 주는 행복마저도 놓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지금 세상은 온통 연두, 그 여린 색들로 치장되고 있다.
    바야흐로 5월이다. 우리 건너 집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붉디붉은 웃음들을 흘리며 거리를 밝힐 것이고 늘 꽃이 피는 19번 국도를 가로지르면 茶香 가득 실은 섬진강도 장미를 닮은 요염한 웃음을 베어 물곤 여유로운 걸음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윗 등성 차밭에는 하얀 수건을 둘러쓴 아낙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하늘이 주신 그 신기한 잎을 재어 담고 있을 것이다.
    이쪽 19번 국도를 내려가지니 저쪽 861번 지방도로가 아까워 자전거를 탄 소설가 김훈은 861번 지방도로로 내려갔다가 섬진대교를 건너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화개를 향해 나아갔다고 그의 책에 적고 있다. 또 김훈은 5월의 화개를 다음과 같이 같은 책에 적어 놓았다.

    “화개 골짜기의 차나무 밭에서는 낙원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 헤매지 않아도 될 듯싶다. 청학동에 이르는 양쪽 골짜기는 온통 푸르른 차나무 밭이다.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햇차의 향기는 바람에 실려 이골 저골로 밀려다닌다. 5월 차나무 밭의 냄새는 풋것의 향기가 습한 육질 속에 녹아 있지만, 5월 찻잔 속의 향기는 이 육질이 제거된 향기다. 詩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낙원이다.”
    김훈의 <자전가 여행 1> 中에서

    늘 차밭 가까이서 헤매는 나는 김훈의 글을 읽고 절망했다. 낙원 속에 살면서도 낙원을 글로 표현하지 못해서 절망했고, 내 목구멍으로 살 속으로 스미는 그 실존의 국물이 또 다른 이상향을 불러온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절망했다. 茶는 요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홀로 즐겨야 그 경지가 신에 이른다 했던가(獨?曰神)? 그러나 좋은 향과 깊은 맛을 지닌 茶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오는 5월 1일부터 열네 번째 맞이하는 야생차문화축제가 화개를 비롯한 악양 일원에서 알뜰하고도 짜임새 있게 개최된다. 더구나 괄목할 만한 경사는 그동안 내실 있게 개최되어온 우리 지역의 야생차문화축제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우수축제에 선정되어 치르게 되는 첫 축제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축제를 모두 합하면 1,000여개가 넘는다. 그중 대표축제 2, 최우수축제가 8곳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수천의 축제 중에서 대한민국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내, 외 군민들이 어깨에 힘 좀 줘도 된다는 말도 된다. 또한 우리 군민들이 앞장서 이 자랑스런 축제와 보물 같은 茶를 널리 알리고 동참해야 된다는 책임에서도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나서면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5월은 가족의 달이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까지, 어머님 혹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평사리공원에서 열리는 달빛 차회로, 또는 최참판댁에서 개최되는 평사리 옛 사진전을 관람하고, 전국 학생백일장에 넌지시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도 좋고, 소설 ‘토지’ 속 인물들과 소설 속으로의 여행은 여러분을 느긋한 여유로움에 빠지게 할 것이다.
    본 행사가 열리는 화개 축제장에 들리시면 입구에서부터 옛 선비들이 차를 칭송하여 지은 茶詩를 비롯하여 산사음악회 등 다양한 체험 및 향 깊은 차 한 잔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엣적 다상 정약용 선생이 혜장선사께 차를 보내라는 편지(乞茗疏)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요새 차에 걸신이 들려 차를 약으로 하고 있다오....(중략)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맑은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떴을 때,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시냇가에 떠 있을 때 한 잔의 차가 목마르다오. 바람 부는 산, 등잔 밑 따끈한 차 한 잔은 자순의 향이요. 물을 긷고 불을 지펴 마당에서 달인 차는 백로의 맛이지요. (중략) 살짝 훔쳐 듣건대, 고해의 다리를 건너는 데는 스님들의 보시가 제일이고 명산의 고액인 서초의 우두머리인 차를 살짝 베풀어 주시는 것이라 했소, 목마르게 바라노니 부디 그 은혜를 아끼지 마옵소서” 라고 적고 있다.

    혹 인심 좋아 보이는 다원의 주인이나, 아니면 평소 일면식은 없더라도 필자도 좋고 우리 군수님께 쓰시는 것도 좋겠다. 다산 선생처럼 절절하고 해학이 넘치는 편지 한 통 쓰시라 어쩌면 귀댁으로 하동의 보물, 그 향 깊은 차 한 통 배달되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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