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지속발전가능성과 멀어져 가는 민노총 여호영

하동신문 0 278

지속발전가능성과 멀어져 가는 민노총

 

여호영

 

부산 한 아파트 신축공사 건설현장 입구에 차량과 데모 대원들이 좁은 길을 메우고 있다. 공사용 차량들이 출입을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주장은 자신들이 추천하는 인력과 장비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허점을 이곳에서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노동단체가 업무를 방해하고 있는 데에도 정부는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단체 행동권이 불법으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최초 노동쟁의는 1929년 원산 영

국계 제유회사에서 발생했다. 감독관 파면, 최저 임금제 실시, 해고 수당제 실시를 요구했다. 3개월간 파업 투쟁을 하였으나 얻은 것은 없었다. 일제의 강경 탄압 결과이다. 노조원 만을 취업 시킬 것인가에 대해 노조와 사용자간 의견차이 도 있었다. 파업을 주도했던 김경식은 대한민국 초대 노동국장이 되었다.

1962년 개정된 헌법부터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하고 있다. 80년, 87년 헌법에도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50년대 자유당 주도하의 헌법에는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하고 있다. 제헌 헌법에는 언급이 없다. 헌법 개정에 따라 노조 파워가 커진 것이라기 보다는 관련 법률 개정과 정부의 자의적인 잣대에 의해 노조 세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노사분규는 노사 의견차이도 포함된다. 무노동 무임금이 어느 정도 정정 될 때쯤 1993년 당시 노동부장관이었던 이인재는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한다면서 사실상 무노동 유임금을 지지한 결과가 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기업은 단체행동에 대한 대응방안이 미약한 상태로 되어 있다. 이것이 조금 더 진전되어 노조 전임자들에 대한 임금을 사용자가 지급하고 있다. 노조 조직자 대비 1% 내지 2%의 노조 전임자가 사용자가 원하는 노동을 하지 않고, 사용자의 자본을 축내고 있다. 노조 전임자의 사무실 공간까지 제공하고 있다. 

건국이래 아홉 차례에 걸쳐 헌법개정이 있었다. 매 헌법에는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특수한 근로자는 단체행동 등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80년대 말부터 법외 노조로 활동하던 교원노조를 김대중 정부 때 허용해 주었다. 허용 직전 전교조는 명동성당 뒤 마당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기진맥진 상태였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있었다면, 국민은 교육현장에서 전교조 홍역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10만명이었던 조합원은 6만명으로 축소되었다. 

법외 노조 였던 것을 2020년 9월 대법원은 ‘법외 노조’가 위법이라 판결했다. 국민은 전교조로 인해 편향적 교육 등 쇼크를 안고 살고 있다. 

2013년 코레일은 만성적인 적자 구조와 여유 인력 및 효율 저하 등을 타개하고자 수서발 고속열차 운영회사를 분리 독립시켜 발족시킬 계획이었다. 이에 코레일 노조는 반발하며 전면 파업을 한다. 사측은 7천8백명을 직위해제 시켰다. 초 강수를 두었다. 노조측은 사측의 경영방침에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의 백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이때 정치권에서 난데 없는 중재를 했다. 노조의 만성적 경영합리화 개선 보다는 직장 복지만 추구하는 병폐를 고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요즈음 노조는 다시 에스알티 회사와 합병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씨제이 택배기사 파업이 20일째 본사를 점거 농성 중에 있다. 작년 6월 노사간 타협이 되어 해결된 문제였다. 택배물 분류작업에 소요되는 시간만큼은 별도 노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민노총이 문제삼고 파업을 한 것이다. 업무 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이 노사합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노측의 상위 기관이 부추긴 결과이다. 

노동경제의 측면에서도 균형 잡힌 노사관계이어야 한다. 현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다. 한번 잘못 채워지면 이를 고치는데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난다. 당해 책임자들은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정도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목숨을 내 놓고 책무를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