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봉명산 진달래 피고 지고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274

봉명산 진달래 피고 지고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원전・곤양도로 삼거리에 이끼 덮인 사각뿔 세운돌이 있다. 전면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좌우면은 봉명산다솔사참도(鳳鳴山多率寺叅道), 뒷면은 을사8월21일시주김용순(乙巳八月二十一日施主金容珣)을 새겼다. 을사년은 1965년이다. 김용순은 하동 악양 출신으로 6,7대 국회의원으로 삼천포・사전・하동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이다. 다솔사 참배도로를 내는 등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적송 가지에 하늘이 가려진 산길을 고개 숙이고 한참을 걷자 앞이 트이며 공터가 펼쳐지고 소라 고동처럼 생긴 바위에 깊게 새긴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에 시선이 멈춘다.

 임금과 관련된 御자로 시작되니 격이 높은 내용이라 짐작은 되건만, ‘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묘 자리를 금한다’이다. 봉명산은 신성한 곳이라 생장을 할 수 없다는 건지, 온 산이 명당이라 중생들의 욕심으로 겹겹 층층이 무덤으로 어지럽힐까 예방하는 지침이련가. 잔뜩 주눅이 드는데 새김바닥은 주색으로 마감되었다.

 숲속에서 빨간 색을 대면하자 호랑이 혓바닥 보는 듯 으스스하다. 식은땀을 닦고 찬찬히 살피니 경계지점을 표시하는 標가 적격이건만 왕에게 올리는 글을 의미하는 表로 하였다. 여기에 무슨 사연이 있기는 있나보다! 

 도량에 들어섰다. 봉새 노래하고 낙남정맥의 기운이 모이는 명당에 절을 세우니 봉명산 다솔사이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은 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창원 등지의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 분성산에서 끝난다.

 적멸보궁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와불상이 있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웠는데 볼수록 마음이 평안해진다. 열반에 들기 전의 부처 모습이라 숨이 멈추는 시점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단 말인데…. 

 뒤로 유리창을 내어 와불 건너 사리탑을 친견할 수 있다. 참배객은 연화대 차(茶)물에 손을 세 번 씻고 합장하여 시계방향으로 돌고 돈다.

 적멸보궁 계단을 내려오면 왼쪽 안심료에서 만해 한용운이 기거하면서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였다. 좁은 마당 뒤로 측백나무 세 그루가 맵시와 높이를 뽐내 것이 만해 스님의 회갑 때 지인들과 함께 심어 황금측백나무라는 자부심인 듯….

 효당 스님은 경내에 광명학원을 세워 인근의 농민 자제를 교육시켰는데 강사는 주로 김동리가 담당하였다. 그는 1934년 신춘문예 당선 이후, 안심료에 머물며 등신불, 황토기 등 많은 글을 쓴다. 특히 당시의 암울한 심정을 ‘진달래’에 담아내고 있다. 

  부도암은 봄이 되면 진달래꽃으로 묻히었다. 그것이 멀리서 보면, 발그레한 아지랑이 속에 조는 듯했다. 큰절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하나 넘어 깎아지른 벼랑을 돌아가면 오래된 암자는 세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이 나직이 앉아있었다. 암자를 지키는 중이라고는 나이 예순을 넘긴 노승과 외손주뻘 되는 아홉 살 먹은 어린 상좌 성혜가 있을 뿐이었다. 

  부도암을 지키는 노승이 열일곱 살의 소년 시절, 두 살 위 이복누이로 하여금 무서운 운명의 씨앗을 남겼고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핏덩이가 자라서 시집을 가며 성혜를 낳아 세 살이 되자 아비를 찾아와 맡기고 떠난다. 가끔 상좌는 종일 진달래 속에서 묻혀 살았다. 어느 날 늦어 돌아오지 않아…. 가슴 위 진달래 묶음 속에 독버섯을 발견한다. 손목은 이미 싸늘하였다.

 정상에 올라 둘러보니 절반은 바다요 나머지는 산이로다. 내리막길을 한발 한발 옮기면 땀이 비 오듯 하건만, 잠시 걸음 멈추면 솔가지 사이에 ‘진달래’의 배경이 되는 바위 굴 속에 부처님을 모신 보안암과 멀리로는 이명산이라 이것으로 보상은 충분하다. 

 꿩이 즐겨 찾을 옹달샘에서 물 한 바가지 마시고 돌아가는 길은 적송 가지로 터널을 이루고 진달래로 담장을 세운 오솔길. 맨발로 흙을 밟으면 너무너무 시원하다. 솟대에 내려앉은 오리들의 환영을 받으며 너더랑을 지나면 마음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공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한번쯤, 진달래로 세속과 인연을 맺은 봉명산 찾아 꿩 소리에 봉새의 노래인 듯 귀를 기울이며 오솔길 걸어보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