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회남정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하동신문 0 122

회남정

안명영(전 하동고 교장)

 삼성궁교를 건너자 꽃길이다. 바닥에 이런 장식의 산길은 처음이다. 길가에 수십개 바람개비를 진열하였는데 띄엄띄엄 바람을 안고 돌아가고 있다. 산 위로 부는 바람도 길이 있구나! 인연이 있어 왔으니 보고 느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리라. 눈높이에 이름표를 걸친 나무도 있다. 소형차가 왕래할 수 있는 길은 폭신한 마사토를 깔았고 가끔 시멘트 포장이다. 산굽이를 돌자 강렬한 칡 향기가 코를 점령한다. 무아지경이다. 어떻게 걷는지 모를 지경이다. 

 간이 화장실을 지나 오르고 내리고 돌고 하였다. 기둥을 세우고 양쪽으로 이정표를 달았는데 앞으로 회남재 정상 4.5km 지나온 삼성궁교 1.5km이다.  정상(頂上)을 ‘산 따위의 맨 꼭대기’라고 해석하니 지금까지는 가볍게 몸 풀기 단계이고 회남재 정상까지 12.4리 고난의 비탈길이 기다리는 구나.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사람들은 쓱 앞서가고 획 지나간다. 절반을 지났는데 배낭이 어깨를 조여 온다. 그 경사길이 나타나겠지 자꾸만 좌우를 둘러보는데 울창한 숲만 보인다. 저만치 챙이 긴 모자에 정상을 밟은 걸음답지 않게 가뿐가뿐 앳된 소년이 걸어온다. 

 “학생, 기운이 넘치네. 회남재 정상이 얼마쯤 남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검색 한다.

“정상 정자까지는 30분 남았습니다.”

갈 길이 바쁜데 ‘몰라요’하지 않고 의젓하게 대답한다.

 나이 많은 사람이 묻고 초등학생이 답을 낸다. 세상이 변한 것을 깊은 산속에서도 알 수 있다. 나이에 비례하여 정보를 쥐고 대접 받던 시대에서 휴대폰에 담긴 정보를 잘 꺼내는 사람이 앞서가는 시대가 되었네!

 꼭대기를 대비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돌고 돌자 묵계초, 악양, 삼성궁교로 가는 분기점에 정자가 나타난다. 학생이 정상에 있다는 그 정자란 말인가.

 회남정(回南亭)이다. 계곡 사이로 보이는 저곳이 삼한시대 변한의 낙노국 수도로서 좌청룡 구재봉, 우백호 형제봉으로 이어져 서출동류(西出東流) 섬진강이 감돌아 남해바다에 빠져드는 배산임수 형상의 천하명당 악양동천이구나.

 정자에 올라 주변을 둘러본다. 차를 마시는 두 노인이 이야기를 나눈다. 

“回南亭에 유래가 있겠구나.” 

“回는 우리말의 뜻은 ‘돌다’이지. 한참 돌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므로 ‘돌아오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지. 南은 ‘남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고.”

“그렇다면 여기서 남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는데 남쪽은 악양 방면이라 ‘익양으로 돌아간다’는 말인데 주어가 없는 애매한 표현이구나.”

“그게 아니지. 南은 방향이 아니라 조식선생의 호가 남명(南冥)이라 南을 차용하여 조선생이 악양을 찾아왔다가 여기서 돌아간다는 뜻이지.”

 회남정을 알 수 있게 유래를 새겨 안내판을 세우면 찾는 이 오래 기억될 것이로되 아쉽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

 경의 사상을 실천 철학으로 삼은 남명 선생은 삼가 뇌룡정을 떠나 지리산이 보이는 산청 덕천강가에 산천재를 세워 후학을 지도하였다. 선생이 악양이 명승지라는 말을 듣고 왔다가 터를 잡았다면 산청 사람이 서운할 것이며, 산청으로 돌아갔다고 하면 하동 사람이 섭섭해 할 것이다. 

 정자를 내려와 왔던 길을 택한다. 회남재 정상을 ‘회남재의 정상’ 즉 회남재 마루라고 정리하니 頂上이라는 압박감과 회남정의 내력을 알게 되어 마음 가볍게 되돌아온다.

 몇 굽이를 돌아야 원점으로 돌아오는지를 헤아려 보기로 하였다. 작심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일본 잎갈나무’에 눈높이 명찰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침엽수는 겨울에도 잎이 푸른데 이 나무는 가을에 잎이 떨어진다’라고 적었고 용수철로 명찰 띠를 하였는데 나무를 진정 사랑하는 마을을 볼 수 있다. 신축을 확인하려 다가가자 수목으로 가려졌던 절벽 같은 경사를 볼 수 있다. 남명 선생이 걸었던 이 길은 말 한필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좁고 위험하기도 했겠구나.

 기다렸다는 듯 칡 향기가 반긴다. 온몸이 노곤하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이큐! 이걸 어쩌나. 한 구비 돌때마다 손가락을 접어 37까지 셈 했는데 향기에 취해 손가락을 펴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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