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하동춘추 21 하동 디아스포라? 흑룡강성 상지시(尙志市) 하동향(河東鄕)

하동신문 0 139

하동춘추 21

 

하동 디아스포라?  흑룡강성 상지시(尙志市) 하동향(河東鄕)

 

 

                        문   찬 인

 

디아스포라(Diaspora). 대대로 살던 곳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다. 기원전 601년 신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왕이 유다왕국을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BC 597년 수많은 유대인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간데서 유래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여러차례 상당한 규모의 디아스포라를 경험했다 

BC108년 한나라의 무제에 의하여 옛날 조선이 멸망당하자 고조선의 유민들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흩어져 내려왔다. 한반도로 내려온 유민들은 삼한(三韓)을 이루었고, 일본으로 도하한 유민들은 그곳에서 삶터를 개척하여 오늘의 일본을 이루었다.

7세기 무렵 삼국이 정립하다 차례로 패망한 후에도 고구려,백제의 귀족과 유민들이 중국 당나라로 끌려가 각지에 흩어져 살았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중앙아시아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집단 공동체를 건설하기까지 한다

1945년 해방 당시의 통계를 봄면 일본에 약 110만명, 만주 일대에 120만명이 이주한 것으로 나온다

연해주 지방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러시아 스탈린의 가혹한 분리 이주 정책에 의하여 1937년 9,10월 중앙아시아 지방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내팽개쳐진 고려인 수는 17만 5천명이었는데 강인한 생명력으로 황무지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고 러시아,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등에 53만여명이 살고 있다

 

“1905년 일본은 일러전쟁에서 승리하여 요동반도와 남만철도(대련~ 장춘)의 운영을 차지하였다. 1931年 9·18사변후 일본인들은 기습작전으로 심양과 만주전역을 점령하고 1932년3월1일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의를 데려다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설립하였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만주땅을 중국침략과 소련침략의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해<만주개척단>을 이민시켰는데 이를 <국책이민>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계획은 1937년에서 1957년까지 500만, 1957년에서 1977년까지 또 500만등 계획적인 이민을 거쳐 동북만주 각지에 약 1 천만 이상 일본인이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동북 만주는 절대적으로 일본의 영원한 영토가 될것이며 지진이 많고 토지가 척박한 일본은 이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한 광대한 신대륙을 얻게 된다   중국인들과 한국인 이민들에게 다시 소작을 주어 농사를 짖게 하였다. 지금 동북각지에 사는 조선족들의 분포를 보면 연변을 제외한 동북 타지역의 집거지는 대부분 당시 개척단의 소재지이다. 

연변에는 함경도 사람 , 요녕에는 평안도 사람, 길림성 서부에는 충청, 경북, 전북사람, 흑룡강에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사람순서로 살고 있는데  압록강 두만강을 거점면으로 하여 한반도의 행정구역과 대칭되게 분포되있다. 연변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조선족들은 대개가  개척단이민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흑룡강성 상지현에 가면 하동향(河東鄕)이 있는데 전부 1935~1937년에 이민온 경상남도 하동군 사람들과 그 후예들이다.(?) ”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료인데 그 근거나 출처가 불명하여 그냥 덮어버렸다

얼마전 여재규님의 하동군사에서 만주로 이주한 하동인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되었다. “아~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자료와 같은 이야기이잖아”

“ 왜정때 하동인 수백호가 개척단 이민으로 만주에 갔다. 1917년 북도 소해란하 이남에 하동사(河東社)가 있었다. 567호 2855명의 하동군민이 이곳에 살았다. 1925.5.1. 만주 하르빈 하동촌의 하동인들이 야학회를 설립하고 농무계 연합회에 가담하였다”

<세계한민족문화대자전>에 의하면 상지시는 10개의 진과 7개향중에서 2개향이 조선족 향이다 13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68만명이 살고있으며 이중 조선족은 24천명이 살고 있다. 대표적  조선족향은 하동조선족향과 어지조선족향이다

하동조선족향에 조선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부터이나 본격적인 하동의 조선인 집단 거주지는 1933년 5월부터 안전농촌을 건설하면서 집단이민으로 온 사람들이 더해져 579세대 2459명이 살면서 시작되었다. 하동향의 이름도 강의 동쪽에 위치해있단느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상지시 하동조선족향에 하동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에 강제 이주한 것이 사실이라면 하동판 디아스포라이다.

아직 2세 후손들이 살아있을 때 군차원에서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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