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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과 한유한취간림 입구에 한글 〔국가산림자산 악양 취간림 지정 목적 및 사유〕라는 안내판이 있다. 〈고려 시대부터 악양면 정동리 악양천 변에 수구막이를 위하여 조성된 숲으로 면소재지에 있어 많은 관광객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구한 전통을 가진 마을 숲으로 산림문화 자산으로 지정하여 널리 보전할 가치가 있다. 고려말 녹사 한유한(韓惟漢)이 당시 하동의 중심지였던 악양현 외둔 마을에 안착하여 선생의 인품과 학식이 유명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마침내 서당을 열어 후학의 훈도에 정진하였다. 정서리 악양천 변에 마을 기운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거나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구막이 숲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수구막이(水口막이)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멀리 돌아 흘러서 하류가 보이지 않는 땅의 생김새를 이르는 말이다. 한유한은 누구인가? 그는 대표적인 지리산의 은자였다. 고려 무신집권기 최충헌의 독재와 매관을 보고서 장차 난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였다. 그는 정치 사회적 혼란을 피하여 개경을 떠나서 은거하기에 적합한 이상향으로 알려진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조정에서는 서대비원 녹사(西大悲院 錄事)의 직을 제수하였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한유한은 무신집권기 도교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며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유학자들은 그를 지리산의 군자(君子)로서 권간이 전횡하던 정치적 혼란기에 벼슬하지 않고 입산하여 절의를 지킨 인물로 생각하였다. 이와 달리 신산 방장산의 신선(神仙)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지리산에 모습을 감추어 신선이 되었을 것으로 상상하였다. 하동에서 화개로 가다보면 길게 눕힌 돌에 악양동천(岳陽洞天)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악양’이라는 뜻이다. 곧 명물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벚나무 터널을 지나자 외둔 삼거리가 나온다. 봉대천이 섬진강에 합수되는 지점이며 평사리문학관 길을 만난다. 그곳 큰 바위에 비석이 있다. 뒷면은 벼랑 끝이라 접근할 수 없고 앞면은 그림자가 빗면을 덮고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글자를 인식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사연을 담고 있을 듯하며 한글 안내판을 기대해 본다. 그 옆에는 기다렸다는 듯 안내판이 반겨준다. ‘섯바위(鍤巖:삽암) 이야기’이다. 〈삽암은 꽂힌 바위라는 뜻이다. 오래 전 이 바위가 있는 곳은 영호남을 연결하는 나룻배가 다녔다. 고려 말 한유한 선생이 난세를 피해 이곳에 은거하면서 낚시로 소일하였다. 임금이 사신을 보내니 “外臣이 아는 것이 없사오니 왕명을 받을 수 없사옵니다”하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사신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벽에 一片絲綸飛入洞 始知名字落人間(한 조각 사륜이 산골짝에 날아드니 비로소 이름이 세상에 알려짐을 알았네)라는 글을 적어두고 북쪽 벽의 작은 창문으로 도망쳐 버렸다〉 사륜(絲綸)이란 조서를 일컫고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이다. 남명 선생의 유두류록(1558.4.16.)에서 〈잠깐 사이에 악양현을 지나고, 강가에 삽암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녹사 한유한 옛 집이 있었다. 고려가 혼란해질 것을 예견하고 처자식을 데리고 와서 은거하였다. 조정에서 녹사로 삼았는데 하루 저녁에 달아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아! 국가가 망하려 하니 어찌 어진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있겠는가. 어진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착한 사람을 선양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섭자고(葉子高)가 용을 좋아한 것만도 못하니, 나라가 어지럽고 망해가는 형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술을 가져오라고 하여 가득 따라놓고 거듭 삽암을 위해 길게 탄식하였다〉 대나무 가지를 잡고 삽암 뒤로 내려간다. 발아래 강물이라 발바닥이 찌릿찌릿 거린다, 바위 면을 사각형으로 다듬고 모한대(慕韓臺)그리고 松南 李世立이라 새겼다. 위에는 ‘又’자의 형태를 식별할 수 있는데 한선생이 낚시하던 곳이라 취적대(取適臺)의 ‘가질 取’자의 획으로 보인다. 남명은 청수역 역원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한유한 정여창 조지서를 ‘높은 봉우리 끝에 옥을 하나 올려놓은 격’이라 하여 군자 중에 군자로 존중하였다. 한유한은 악양에 터를 잡고 후학을 지도하고 취간림을 강조하였다. 남명은 후학을 지도할 후보지를 악양으로 하고 돌고 돌아 악양동천이 보이는 곳에서 돌아갔다. 그 고개길을 회남재 정자를 회남정(回南亭)으로 불린다. 한유한은 지금의 회남재를 넘었을까! 배를 이용하여 서해안을 거쳐 남해에서 섬진강 따라 악양으로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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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Ⅱ)한 아름 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마다 눈높이 몸통에 두 개씩의 설명판을 가느다란 용수철 띠로 고정되어 있다. 하나는 번호표 또 하나는 나무이름과 설명을 적었다. 띠를 용수철로 한 것이 인상적이다. 철사를 사용한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부피와 길이 자람을 하는데 제때 교체가 되지 않으면 몸통에 상처가 생긴다. 나무가 말을 한다면 고통을 호소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헤아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취간림에 용수철을 띠로 사용한 것을 보면서 악양사람들의 나무를 위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관리번호 〈하동 악양 취간림 109〉. 설명판에 〈상수리나무. 굴참나무와 비슷하지만 잎 가장자리 바늘모양 톱니에 엽록소가 없어 희게 보이고 잎 뒷면이 노란 녹색을 띤다. 임진왜란 때 피난 간 선조가 상수리나무 열매로 쑨 묵을 좋아하여 항상 수라상에 올라 상수리나무라 한다〉 톱니가 희게 보이는 이유를 알게 되고 선조의 수라상에 올라 상수리나무란다. 취간림은 200여년전 악양천 모래톱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왕버들나무 숲을 비롯하여 마을 주민들의 기념식수를 통해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7000제곱미터 면적에 120분의 수종이 자라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며 다양한 마을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8개 기둥으로 멋을 부린 팔각지붕이다. 기둥 마다 주련을 걸었다. 취간림과 주변 경관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초서체 한자로 쓰여 읽고 뜻을 새길 수 없으니 그림으로 감상하고 화려한 채색에 눈이 호강한다. 안쪽 처마 밑에 현판이 있다. 〈기증서. 팔경루(八景樓)는 면민의 휴식과 정서함양에 활용하도록 악양 면민에게 기증함 1993.3.25. 홍갑동〉 기증자 일본 주소도 첨부되었다. 위쪽 중앙에 지리산항일투사기념탑, 왼쪽으로 충혼탑, 오른쪽에 평화의 탑과 청학정이 있다. 〈지리산항일투사기념탑 비문. 누가 이 땅 지리산에 사람이 없다 하랴 누가 하동군 악양 땅에 의인이 없다 하랴 초토화된 망국의 이 나라 상투머리는 쇠풀처럼 베어지고 빼앗긴 들녘에 까마귀 울음만 성성한데 정녕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지고지순한 목숨 더럽힐 수가 있겠느냐 마침내 의로운 백성들이 일어섰으니 대피리는 서슬 퍼런 죽창이 되었다. 주름진 이마에 분노의 수건을 두르고 부황 든 깃발, 피 묻은 깃발을 펄럭이며 대한독립만세! 결사항전의 북소리가 울렸다. 위로는 푸르디 푸른 하늘을 이고 아래로는 더 깊이 뿌리를 박으며 이 나라 금수강산 지리산을 되찾았으니 누가 이 땅에 의로운 사람이 없다 하랴 바로 이 자리에 그 정신의 골격을 세운다. 2008년 광복63주년 9월6일 글 시인 이인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 비석 〈항일투사 약사〉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 의병장 임봉구(1880-1908.7.27 하동군 악양면)이다. 임봉구는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1907년부터 지리산 일대에서 박매지(박인환) 의병장과 함께 청년 500여명을 규합하여 의병대를 독자적으로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펼쳤다. 특히 그는 1908년 7월 24일 양보면에 소재한 일어학교를 방화 전소시키고 일진회원 다수를 처단했다. 그러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하동경찰서 유치장에서 고문으로 28세의 나이에 옥사했다(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의병장 임봉구는 정식재판도 받지 못한 채 4일 동안 혹독한 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일본의 풍신수길은 조선 국왕을 잡으면 끝이라는 판단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선조는 부랴부랴 의주로 피신하면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여차하면 명나라로 넘어갈 작정이다.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은 후퇴하면서 많은 문화재를 불태우고 약탈하며 도공 및 포로들을 끌고 간다. 그중에 임해군 아들과 양보 보현암에서 공부하던 여대남은 일본에서 일연・일요스님으로 만나지만 귀국하지 못한다. 가깝게는 1900년대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이 각지에서 일어나 의병 정신으로 뭉친 대한인은 일제의 노예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의병장 임봉구는 28세에 의를 위하여 순국하였다. 대한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옥사한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추모해야 하겠다. 비문은 한글로 되어 읽을 수 있지만 글자 사이에 먼지를 털어내고 주변을 청소하자. 평화의 탑 옆에 청학정(靑鶴亭)이 있다. ‘악양국악회 사무소’라는 주련이 걸렸고 근처에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 명창 유성준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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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들려드리는 국고 이야기인류가 남긴 세계적인 건축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타지마할이 삼 백 오십 년 전에 지어 졌다. 인도의 중부 아그라에 위치하고 있다. 델리에서 남쪽으로 약 400킬로 간다. 세계 7대 기적으도 선정되었다. 건축 주는 당시 무굴 제국 황제였다. 세계 유일의 건축물이길 원했다. 흰색 대리석 판에 상감기법으로 각 가지 다른 색채를 띄는 보석으로 문양을 조성했다. 지금껏 하자 없이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 황제가 조영에 참여한 이만 명 장인들의 손목을 잘랐다는 설화가 전해 진다. 이와 같은 건축물을 다른 곳에서 다신 짖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인도 마지막 왕조 무굴 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은 어느 날 저녁 야시장에 구경 갔다. 야시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관망대 위 보도를 거닐고 있었다. 황제가 14세의 여인을 발견한다. 뭄타즈 마할이다. 첫 눈에 들었다. 그 녀를 궁전으로 오게 한다. 5년을 궁에서 지낸 후 결혼을 한다. 왕후는 13명의 아들 딸을 낳았다. 변방 지역에서 전쟁이 났다. 왕과 그의 가족들이 함께 출정했다. 전쟁터에서 왕후는 14번재 아이를 출생하다가 사망하고 만다. 6개월 후 황제는 죽은 왕비를 추념하는 사자를 위한 궁전 공사를 착공한다. 지금껏 건축된 바 없는 세계 유일의 장엄한 궁전을 짓는다. 건물의 모든 부위가 대리석으로 축조된다. 노출되는 대리석은 문양이 새겨진다. 꽃이 주류를 이룬다. 문양에서 꽃의 의미는 천국을 의미한다. 대리석 4절지(16절지 4매) 크기 한 조각을 납품 단위로 한다. 관리 번호를 붙인다. 완성하기 위해 장인, 보조인 등이 필요하다. 5개월이 소요된다. 설계도에 의거 모든 노출용 상감 대리석들은 제각기 다른 곳에서 위탁 체계로 생산되었다. 엔지니어링의 고도화와 성숙단계에서 가능할 법한 사업관리 운영 체계이다. 착공한지 12년이 지나 완공하였다. 공사비는 지금 돈으로 환산해보면 8억2천만 달러가 된다. 1조원이다. 당시 인류 문명의 최고봉들이 대거 동원 되었다. 출입문 아치 천정은 압권이다. 천정 벽면은 반 타원형 곡선이 적분한 상태이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곡면을 창출하고 있다. 천정에 그린 그래픽컬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미래 과학까지도 압도하고 있다. 출입문 천정의 기하학적 문양은 이 사자의 궁전이 얼마나 최첨단의 과학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타지르 마하 궁전은 무굴 제국의 재정을 파탄 나게 했다. 민심은 흉흉해 갔다. 이틈을 노린다. 아들 중 한 왕자가 아버지 황제를 아그라포트 궁내 감옥에 집어 넣는다. 전광석화 같이 해 치운다. 쿠데타다. 그 후로 아버지는 한번도 자유의 몸이 되어 보지 못했다. 감방의 위치는 자신의 왕비를 모신 타지르 마하 궁전이 창을 통해 보이는 곳이다. 강 옆에 있기에 강물에 비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석양에 지는 태양이 궁 뒤로 넘어가는 장관도 볼 수 있다. 감옥 속의 왕은 천수를 다할 때까지 8년간이나 타지르 마하 궁전을 보면서 옥중 생활을 견디어 나갔다. 황제 개인의 의지에 의해 국가 재정을 파탄 낸 것이다. 국민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 궁을 건립할 즈음 서구 열강은 대 항해 시대를 만끽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의 전초를 다지고 있었다. 국제 교역량이 증대되고 있었다. 부국강병을 국가 운영의 최고 이념으로 삼았다. 당시 무굴 제국이 서구 열강과 같은 부국강병 정책을 펼쳤더라면 200여 년간의 영국 식민통치는 없었을 것이다. 재정의 효과적인 집행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길이다. 지속 발전을 담보한다. 시대정신에 맞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 이어야 한다. 국가의 존망을 가름하는 공무원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국가 부채의 증가는 국고를 탕진한 정권의 성적표이다. 국고를 탕진한 최고 책임자와 관계 공무원들의 일생을 옥중 생활을 하게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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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연극이 끝난 무대를 바라본다. ‘그 여자가 행복했을까요?’ 극중 진행자가 관객을 위해 묻는다. 티켓을 받으면서 함께 받은 하트가 그려진 종이를 사용할 때가 되었나보다. 한쪽은 빨간색 하트 그 반대쪽은 검은색 하트가 A4 반절 크기의 종이에 가득하다. 좋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하였다. 온 마음을 바쳐, 아니 온 생애를 바쳐 그 남자를 사랑하였다. 그 사랑으로 그 여자는 행복했을까. 같이 간 우리는 빨간색 하트를 들었다. 그렇게 약속한 것도 서로에게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여자의 사랑이 눈물겹도록 슬펐지만 그래도 그건 사랑이었다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을까. 지금이 아니라면 과거 그 어느 순간 그 여자처럼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 그런 사랑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시절 행복했을까. 많은 생각으로 저녁이 가득하다. 예술회관을 나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의문 부호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질문은 우리에게 하나의 고정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깊고 넓은 생각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림책의 한 페이지를 놓고 수 십 개의 질문을 만들어 보던 수업이 생각난다. 똑 같은 그림 한 페이지를 열고 얼마나 많은 질문들이 오고갔는지 모른다. 질문으로 소통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경험하였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한 열악한 수업 환경이었지만 마음을 열어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또 생각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내면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의 연극 ‘의자 고치는 여자’의 관람이 더 좋았던 이유는 마지막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대 장치도 그 흐름도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지만 그보다 우리를 향해 던졌던 그 질문만큼 자극적이진 못했다. 무대로 올라간 몇 명의 관객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 했다. 그 여자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이유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말했다. ‘저런 이유로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한다. 그 의견을 존중해 줄 수 있지만 내 의견은 그들과 다를 수도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 후 함께 하는 저녁자리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의 한 부분을 훔쳐 본 듯한 느낌, 그 흥분된 마음은 한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각자의 인생이 연극보다 극적이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가슴에 가득 담겨 있는 아픔과 절망들이 그래도 가끔 이런 기회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춘기 아이의 달라진 행동들이 걱정스러워 나를 찾아온 엄마를 만난다. 가르치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엄마가 안타깝기도 하다. 자신의 생활은 없고 오로지 아이들을 향해 있는 부모님들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조금 떨어져 바라봐주시라고, 좋은 질문으로 아이들의 많은 생각들을 이끌어내어 보시라고. 그리고 나에게 물어볼 오늘의 좋은 질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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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노조 파업보다 더 무서운 것2만 3천명이나 고용하고 있는 코레일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아무런 리더쉽이 없는 정부가 걱정이다. 철도 차량을 이용하는 영업부문을 민영화하려고 하는데 코레일은 결사코 반대한다. 자유시장 경제를 영위한 모든 국가들이 철도 차량 영업에 대해서는 민영화하여 잘 돌아가고 있다. 민영화 반대 논리는 날이 갈수록 옹색해진다. 정부 입장은 코레일의 만성적 적자를 점차 줄여 보고 싶은 것이다. 나라 살림에서 적자가 점점 더 커지는 형태로는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해마다 적자의 규모를 줄이고 싶다. 현재의 경영 구조로 봐서는 불가능하다. 한해가 지나면 2만 3천명 모든 직원의 호봉이 1호봉 이상씩 올라간다. 이에 따른 급여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만큼 전년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지불 해야 한다. 벽지 노선 및 저소득층을 위한 저속 차량 무궁화호 등 운영에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부문을 떼어 놓고 별산하면서 고속 열차 등 경쟁력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경영합리화가 필수불가결하다. 이러함에도 코레일은 정부의 적자 해소 및 경영합리화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면서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2016년 에스알티 개통에 즈음하여 공기업 간 내부 경쟁을 할 수 있는 경영구조(거버넌스)를 만들었다. 에스알의 슬림화한 경영체계가 얼마만한 생산성을 낼 수 있는지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코레일에 대한 민영화 조건 또는 경영구조 개선에 나침판 역할로 사용할 수 있다. 이를 눈치챈 코레일은 현행 에스알을 붕괴시켜야 할 절박한 시점에 온 것이다. 마침 경전선 고속전철화가 완성된 시점이다. 진주에서 출발하는 케이티엑스가 수서역을 종점으로 하는 노선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에스알의 영업구역을 침범하여 에스알의 고유성을 훼손하겠다는 의도이다. 현재 고속철도망에 병목현상이 발생한 구역이 있다. 오송역 전후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는 기술적 최대한도의 고속 열차를 배차 운송 간격(슬럿)을 모두 사용 중에 있다. 더 이상 고속 열차를 증편할 수 없다. 진주발 고속열차의 증편에는 기존 운행 편수를 그만큼 줄여야 한다. 코레일 노조의 파업에 이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서민이 이용하는 철도를 멈추게 하고 있다. 에스알은 10% 저렴한 요금 혜택을 서민들에게 주고 있다. 코레일은 에스알티의 편수를 줄여 그들의 열차 편수를 늘려 달라 하고 있다. 서민들에게 10% 더 비싼 요금으로 이용하라는 뜻이다. 에스알의 연륜이 좀 더 쌓이면 수많은 경영 지표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코레일은 이것이 두려울 것이다. 정부는 정직하게 나와야 한다. ‘철도 부문에서 더 이상 적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경영구조로는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없다. 고속철도 부문을 민영화하여야 한다. 향후 10년 이내 철도의 일부는 무인화 될 것이다. 이에 따른 기관사 등의 직종 종사자들에 대한 전직 교육을 강화하여 나갈 것이다. 철도차량을 이용하는 부문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도록 모든 국력을 집중할 것이다.’ 노조의 요구에 대해 정부의 대응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민영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미 운행하고 있는 케이티엑스의 종착지가 달라져 열차 이용객의 혼선 발생, 열차 이용객은 동일 노선 열차에 대해 다른 요금을 내야 하는 혼선이 발생한다는 등.’ 정부는 잡다한 이유로 노조에 대응하려 하지 말라.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모든 국가들이 채택한 그로벌 스탠다드를 견지하겠다는 것과 더 이상의 적자 재정을 다음 세대에 넘길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코레일의 파업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경제 체계로 가느냐 기득권 보호 속의 철밥통 경제로 가느냐의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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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그렇게라도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욕구가 없는 게 더 큰일이야.’ 신형의 휴대폰이나 스피커, 신형의 컴퓨터나 마우스까지 관심이 많은 동생이 있다. 과학교사인 동생은 사는데 큰 재미가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항상 마음이 아팠다. 크게 즐거운 일도 크게 고민하는 일도 없이 덤덤하게 세상을 살고, 더군다나 미혼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를 책임진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연휴에 아이들이 있는 일본을 가는 친구가 있다. 조심스레 동생이 묻는다. ‘그 언니가 언제 일본을 가?’ 하고 물어온다. 처음에 그 이유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연휴가 길어서 일본을 가고 싶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럴 리는 없고… 평소 동생을 잘 아는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흩어버렸다. ‘왜? 28일 간다고 했어.’ 무슨 말을 할지 한참을 망설이더니 신형 휴대폰 구입을 부탁해도 될까 물어온다. 아, 그래서 한참을 뜸을 들였구나. 자신의 돈으로 구입하는 것도 동생은 낭비를 한다고 생각할까봐 조심스러워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조금 일찍 출시가 된다며 염치없어 한다.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그러마 약속해주는 친구가 고맙다. 성가신 일이고 신경 쓰이는 일인데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주는 사람이어서 마음 놓고 들이댔는지도 모르겠다. ‘잘됐다. 돈은 없지만 갖고 싶어서…’ ‘그래, 잘했어. 네가 네게 주는 추석 선물이라 생각해.’ 내게 사달라는 것도 아닌데 내게 미안해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한마디 해준다. ‘다행이다. 그리 말해주는 사람 있어서…’ 이 한마디가 내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람에게 욕구란 무엇일까. 나를 나답게 하거나, 나를 살아있게 하는 감정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욕구가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게 갖추어져 있는 요즘의 아이들을 만나면 어떤 아이인지 가늠하기 힘들 때가 많다. 절실하게 내가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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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기자’ 감별법과 근절 방안‘사이비 기자’ 논란으로 하동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발단은 지난 17일 하동에서 폭넓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 모씨가 자신의 SNS 계정에 일부 지역언론 기자의 횡포와 비리를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태를 계기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기자에 시달리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구체적으로 어떤 기자가 ‘사이비 기자’이고 ‘사이비 언론’인지 알아두면 좋을 법 하다. 일반적으로 ‘사이비 기자’란 ‘언론인이란 직책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는 기자’를 말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변이를 거쳐 콕 집어 말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다. 언론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사이비 기자를 ▲권력과 금력에 결탁하여 특정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 ▲언론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자 ▲촌지와 향응을 탐닉하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는 자 ▲진실·정의·양심에 위배된 기사를 작성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소속 매체와 관계없이 개인의 행실에 따라 누구든 사이비 기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사이비 언론’에만 ‘사이비 기자’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언론사주 또는 경영진이 사이비 짓이나 파렴치한 범죄 혐의로 처벌받은 경우가 있다면, 해당 언론사 자체를 '사이비 언론'으로 보면 대개 정확하다. 사이비 짓으로 사법기관으로부터 처벌을 받은 경우에는 판별이 쉽지만, 사실 사이비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언론도 기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사기업과 다름없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가 주변의 지인들에게 구독을 권유하고, 혹시 광고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정도의 소극적인 영업활동마저 사이비로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10가지 특징 우선 20년 넘게 언론 관련 일을 한 경험으로 비추어 ‘사이비 기자’ 감별법 10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언론사주가 사이비면 사이비 언론이라 단정해도 좋다. 사주 또는 최고경영자가 사기, 횡령, 폭력, 변호사법 위반 등 파렴치 범죄가 있다면 이 언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이비 언론이다. 이런 인간이 사주이면 틀림없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언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사이비는 지역 여론을 호도하고, 민의를 왜곡하는 것에 전혀 죄의식이 없다. 오로지 개인의 사리사욕,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권력에 빌붙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어 편파 왜곡보도는 기본이고, 정의와 양심 나아가 언론의 신뢰성은 안중에도 없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론을 권력화하여 지역을 마구잡이로 분탕질한다. 이런 사이비는 지역기관장, 기업인, 지역 정치인이 정기적으로 인사(?)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 지면을 흉기로 사용한다. 2. 이권 개입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 사이비가 맞다. 사이비 기자들은 언론사의 영향력을 악용해 이권에 개입하여 반대급부를 받아내는 능력이 출중하다. 주로 관공서 인허가, 공공기관 발주 공사, 관급자재 납품 등에 개입하여 위력, 협박을 행사하여 자신의 배를 불린다. 자신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해당 업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업체를 등에 업고, 일감을 따주게 하고 일정의 커미션을 먹는 브로커 노릇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3. 촌지, 향응에 익숙하면 사이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소속 매체와는 관계가 없다. 유력 언론매체라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사이비 기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얻어먹고, 받아먹는 데는 통달의 경지에 올라 있다. 당구에서 쓰리쿠션치 듯 어디를 때리면 언제, 어디에서 돈이 나오는지를 귀신같이 안다. 사이비인가 아닌가의 기준을 덧붙이자면 이런 사이비들은 대부분 기사 쓰는 방법도 모르고 또 쓸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들이 잘하는 것이라곤 혹시 기사라도 쓰게 되면, 해당 기관에 전화해서 은근히 생색을 낸다. 돈 달라는 소리다. 말을 못 알아듣거나 듣지 않으면 약점을 잡아 겁을 주고, 협박에 들어가는 데는 선수급이다. 그리고 이들은 사실상 ‘사칭’의 귀재들이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기자’라는 것을 내세운다. 관공서,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술집에서, 목욕탕에서, 산에서도 ‘기자’라는 것을 유독 강조한다. 4. 무늬는 유가지인데 실제는 무가지일 경우 사이비일 확률이 높다. 신문 구독료는 책정돼 있고, 유가지라고 말은 하는데 실상은 길거리 점포나 특정 기관 등에 무작위로 배포하는 신문이 있다면 사이비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신문을 아무 곳에나 배포하는 이유가 자기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5. 기자증을 들고 다니며 위세 부리는 느낌이면 경계해야 한다. 옛날 70~80년대 정보기관의 신분증 같은 모양으로 ‘PRESS’ 또는 ‘보도’라는 글씨에 빨간줄 사선을 그어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위압적인 신분증을 달고 다닌다면, 의심을 해야 한다. 요즘은 공공기관에서 보도증을 발급하지 않으며, 공식적인 대규모 행사 등이 있을 때 주최기관의 편의상 한시적으로 ‘보도’ 글씨가 있는 표찰을 배부한다. 사이비일수록 '보도' 또는 'PRESS'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완장이나 비표 같은 것을 남들 보라는 듯 가지고 다니며, 어떤 사이비들은 교통경찰이 쓰는 경광봉이나 경광등을 갖고 다니기도 한다. 6. 공갈 협박, 갈취를 일삼으면 100% 사이비다. 취재는 뒷전이고 공갈, 협박, 갈취할 거리가 되는 정보 수집에 혈안이면 이 역시 사이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이비의 주특기가 이권 개입이나 상대의 약점을 잡아 갈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팩트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을 만나 상대를 떠보고, 돌려쳐서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고, 활용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7. 어깨 힘이 잔뜩 들어간 기자가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 사이비는 기사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간혹 기사를 쓰더라도 자기 배를 불리는데, 도움이 되는 목적을 배경에 깔고 기사를 쓴다. 이들은 알량한 자기 지식을 과시하고, 취재원과의 논쟁은 물론 반드시 상대를 깔아뭉개고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취재원과 불필요한 논쟁을 금한다’는 취재수칙 1장도 모르는 사이비 중의 사이비다. 그러면서 자기가 쓴 내용에 일부러(?) 특정 기관이나 특정 기업을 언급하고 찾아가거나, 전화해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거나, 희번덕거리며 은근히 겁을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8. 기자 직책 외에 여러 가지를 겸업하고 있으면 사이비를 의심해야 한다. 기자이면서 다른 업종을 같이 하고 있으면 기자라는 직책을 다른 업종의 영업에 이용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100%이고, 이는 사이비 가능성의 순도를 높여 준다. 제대로 된 언론사는 기자에게 겸업이나 겸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기자가 ‘기자’라는 직책 외에 그것이 영리이든 비영리이든 각종 단체에 직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결국 자기 몸집 과시용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9. 타 언론에 게재된 광고를 보고 전화해서 광고주를 괴롭히는 행위도 사이비의 변형이다. 다른 언론에 광고주의 자발적인 광고와 언론사 관계자의 발굴형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서 “00언론에는 광고를 주고 왜 나에게는 광고를 주지 않느냐”는 항의 전화를 통해 광고를 갈취하는 행위도 사이비의 전형이다. 자기는 “우리도 광고를 줄 수 없느냐”고 전화했다고 발뺌하겠지만, 전화를 받는 광고주 입장에서는 사실상 협박이고, 커다란 압박의 다름 아니다. 자기가 광고를 유치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타사 언론에 난 광고를 보고 광고를 유치하겠다는 심보는 자생력을 갖춘 언론이기를 포기하고 ‘기생 언론’을 하겠다는 의사 표시이다. 이런 행위로 인해 지역언론의 광고시장은 파괴되고 결국 해당 지역언론은 공멸(共滅)의 길을 걷게 된다. 10. 팩트 체크는 뒷전이고 마구잡이로 배설하듯 기사를 쓴다. 사이비 기자의 주특기가 제대로 된 취재나 팩트 체크는 하지 않고 배설하듯이 개발새발로 기사를 쓴다. 이들은 팩트를 부풀리고, 소설 냄새가 물씬 나는 기사를 갈기기 바쁘다. 자기가 쓴 기사가 논란이나 문제가 되면 ‘알권리’라는 방패에 비굴한 얼굴로 숨기 급급하다. ◇우리 사회는 책임없나 우리 사회에 사이비 언론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투명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사이비 언론은 바퀴와 같아서 어둡고, 음습한 곳을 서식지로 삼는다. 역설적으로 사회가 밝고 깨끗하다면 사이비가 발붙일 환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필자의 경험칙으로 보면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 되고, 정기적인 선거가 있으면서 ‘사이비 언론’이 활개를 치게 된 측면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선거철-그것이 총선이든, 지방선거나 조합장 선거이든-은 ‘사이비 언론의 계절’이 된다.그들은 출마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돈깨나 있는 후보자, 정치 생리를 모르는 후보자는 그들의 밥이다. 사이비의 후보자 접근 방식은 지극히 평이하다. “당신 인지도가 너무 낮고 지지도는 아예 없다. 우리가 기사를 통해 띄워 줄 테니 권커니 잣거니 하자”고 꼬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출마자는 거의 그 꾐수에 넘어간다. 그 방법에는 후보자 이름 자주 올려주기, 지면 편집 확대하기, 후보자 동향에 대한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심지어 언론 여론조사를 핑계로 여론조작도 서슴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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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간림(Ⅰ)악양 구재봉 기슭에는 1955년 개교한 악양중학교가 있다. 조회대 우측 화단에 단을 세우고 그 위에 희귀한 돌을 얹었다. 옆에서 보면 등껍질과 꼬리와 머리 부위가 영락없는 거북이다. 앞에서 보면 잘록한 목에 볼록 나온 머리의 향하는 방향은 교문에 있는 히말라야시다이며 등・하교하는 학생들을 반겨주고 배웅하고 있다. 히말라야시다는 땅에 거의 닿을 듯이 아래로 늘어진 가지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위로 갈수록 차츰 짧아져서 전체적으로 원뿔모양의 아름다운 자태를 만든다. 자연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연미인’이지만 적당한 높이에서 가지를 잘라 단발머리 형태로 생동감이 넘치고 항상 푸르다. 거북이돌 옆에서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숲속 입구에 커다란 세운돌이 시선을 끈다. 가운데가 잘록한 넓은 자연석에 한자로 굵고 깊게 새기고 푸른 물감으로 마감하였다. 아래 林은 나무 木이 겹쳐 ‘임’으로 읽고 수풀이라고 뜻을 해석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글자는 멋을 부린 필체라는 것으로 만족해야겠구나. 오가는 사람 몇 명이나 翠澗을 읽고 뜻을 새길까 우려된다. 기단에 한글로 〈국가산림문화유산 악양취간림 지정일 2019.12.30〉이다. 두 글자는 ‘취간’로 읽을 수 있지만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사전에 의하면 翠는 ‘푸른 취’이다. 물총새의 깃을 뜻하는 羽(우)와 음을 나타내는 卒(졸→취)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翠의 쓰임 예로 〈비파만취 오동조조(枇杷晩翠 梧桐早凋)〉에서 ‘비파나무는 늦은 겨울에도 그 빛은 푸르고 오동잎은 가을이면 다른 나무보다 먼저 마른다.’ 涧은 ‘산골물 간’이다. 뜻은 ‘산골물’이며 ‘간’으로 읽는다. 한자(漢字)는 중국말로 읽고 뜻은 우리말로 새기며 하나의 한자에 여러 개 음과 다수의 뜻이 있다. 바위 뒤로 돌아간다. 세로글씨 붙여쓰기이며 한자와 한글의 혼합 글이다. 〈翠澗林由來. 岳陽洞天은 北에서 南으로 흐르고 岳陽川의 中間支點 翠嶝에 水口幕役割을 하도록 造林하고 가꾸어 오면서 秀麗한 景觀으로 다듬어졌으며 翠澗亭이 建立된 이래 이 숲을 翠澗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歲月의 흐름 속에 亭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在日同胞 洪甲童翁께서 私財로 八景樓를 建立 寄附하여 면민의 休息空間으로 活用되었으며 2천년 삼림청 주관 생명숲가꾸기 國民運動 本部에 第一 먼저 優秀賞을 받은 아름다운 숲이다. 西紀 二千四年 一月 日 竪 素泉 書〉 한자를 읽고 뜻을 풀이하기 어렵지만 翠嶝와 竪는 더욱 어렵다! 해방이후 한글전용을 실시하였다. 교과서에서 한글 낱말 뒤 괄호 속에 한자를 삽입했다가 점차 사라졌다. 요즘 한자로 쓰인 책을 읽고 뜻을 새길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 조선왕조실록과 난중일기는 국보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매일 행적을 기록한 사초와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하여 사후에 편찬된 것으로 기록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평가 받고 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진중 일기이다. 한자로 작성되어 소수의 전유물이었지만 한글로 옮겨 널리 읽혀지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난중일기 백의종군편에서 이순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1597. 5.4. 갑오. 비가 내렸다. 오늘은 어머님의 생신이다. 슬프고 애통함을 어찌 견디랴. 닭이 울 때 일어나 앉으니 눈물만이 흘렀다. 오후에 비가 크게 내렸다. 1597. 7.2. 신묘. 맑음.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인데, 멀리 천리밖에 와서 군영에서 복무하고 있으니 인간사가 어찌 이러한 것인가. 翠澗林 세움돌 옆에 한글 안내판이 있다. 〈국가산림 자산 악양 취간림 지정 목적 및 사유. 고려 시대부터 악양면 정동리 악양천 변에 수구막이를 위하여 조성된 숲으로 면소재지에 있어 많은 관광객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구한 전통을 가진 마을 숲으로 산림문화 자신으로 지정하여 널리 보전할 가치가 있음〉 〈설명자료. 고려말 녹사 한유한 선생이 당시 하동의 중심지였던 악양현 외둔마을에 안착하여 선생의 인품과 학식이 유명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마침내 서당을 열어 후학의 훈도에 정진하였다. 정서리 악양천 변에 마을 기운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거나 마을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수구막이 숲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한자 비문을 읽지 못하면 관심에서 멀어지며 이끼 끼는 장식품으로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문화 계승자이다. 읽고 이해할 수 있게 〈翠澗林由來〉를 한글로 옮긴 안내판을 설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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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죽음 장관이 할 일이 특별히 없다.최근 초등학교 교사 몇 분이 극단적 선택을 스스로 하였다. 공교육 체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돌아가셨다. 정국 50여 만명의 교사들의 대부분이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포하고 학생을 뒤로 남기고 학교를 뛰쳐나왔다. 공교육 체계를 손 봐야 할 시점이 한참 늦었다. 전교조가 태어날 때부터 공교육은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되고 말았다. 2010년 좌파는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상대적으로 교권은 제한되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학생은 교사와 대등한 관계로 설정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례에는 학교에서 체벌 금지, 휴대전화 그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 양심에 반하는 내용의 반성문, 서약 등 진술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소지품 검사를 해서는 안된다. 임신·출산 등의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때부터 학생 또는 학부모와 교사 간 고소 고발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조례는 공교육을 망가트리는 게임체인저가 되었다. 아동복지법에 따른 피해 아동 발생시, 아동이 초·중등 교육법에 따르고 있다면, 이 법에 의거 처리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현재의 교육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당시 취임 초기 한 조찬강연회에 나왔다. 신임 교육부장관으로서 포부를 밝힌다. 내용은 방과 후 교실이었다. 장관이 바뀌어도 교육체제 전반을 바꿀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을 한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교육부 장관을 힐난했다. 교육개혁을 주도해야 할 교육부 장관이 한낱 방과 후 교실 따위를 가지고 국민을 현혹 시키느냐? 우리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고, 이에 맞는 인재를 길러 내야 하는데, 이에 알맞은 교육체계가 어떻게 바뀌어 가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 방과 후 교육,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 밖엔 안된다. 최근 교육부 장관은 취임에 즈음해서 대입제도 및 수업 혁신에 대해 미세조정을 하겠다고 한다. 학교 수업의 정상화와 수시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법계에 법꼬라지들이 있듯이 교육계에도 교꼬라지들이 있다. 이들은 교육제도 등에 관해 일생을 몸 바쳐온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고유의 밥그릇이다. 교꼬라지들이 신임장관의 미세조정을 툇자 놓았다. 그들이 전문적으로 대한민국 교육과정 중, 제7차 교과 과정, 최근 수시 개정 교육과정 들의 이행 노하우는 너무나 세세하고 복잡하다. 그들이 신봉하는 그들만의 교육철학 등으로 현란하게 논리를 편다. 결국 신임 장관의 미세조정 복안도 거부(리젝트) 당하고 만다. 교꼬라자들은 이러한 무기를 가지고 장관 머리 위에서 군림한다. 그들은 장관을 한낱 과객(지나가는 손님)이라 치부한다. 교육과정을 신속 개정하는 과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개정은 헌법 개정만큼이나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좌파들의 대못 때문이다. 교고라지들의 발효 때문이다. 방대한 규정 지식을 앞세우는 그들, 편견에 가득찬 팩트, 오만의 교육철학, 교육감 선거 노하우 등으로 교육 주권을 장기 집권하고 이를 휘두르고 있다. 교육개혁을 위한 개혁 로드 맵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 왜 교육 개혁이 필요한지?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 개혁 완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절차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교육개혁 결과를 수정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떤 절차를 거쳐 수정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교육 권력을 윤성열 정부가 찾아 와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아무런 입법 활동을 할 수가 없다. 17개 교육감 선거구 중 9곳이 진보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것도 서울 등 주요 지역이다. 공교육 맞춤의 날을 주도한 세력이 전교조와 맞짱 뜰 수 있는 새로운 교원노조로 탄생하였으면 한다. 젊은 신임 교사들의 조국을 행한 꿈과 희망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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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오는 길에 부추 좀 잘라 오너라.’ ‘꽃이 한참인데 먹을 수 있나요?’ 꽃대를 올려 뻣뻣해진 부추를 먹을 수 있을까. 어머니의 주문에 잠시 주춤거린다. 손바닥만 한 부추밭에 가서 꽃이 핀 부추의 반바닥을 잘라 눕힌다. 뿌리만 남은 부추밭은 수확을 끝낸 논바닥 같다. 작은 아이랑 할머니댁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오전에 만나서 줄 것도 주고 얼굴도 보고 점심도 먹이고 싶어서였다. 어머니는 나를 만날 생각으로 나는 내아이를 만날 생각으로 주말을 비워놓고 있었다. 아이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았다. 옷가지도 챙기고, 약도 챙기고, 가져다 달라는 노트북도 챙기고… ‘엄마, 내일 아침 가는 길에 집에 잠깐 들렀으면 해요. 지금 멀리 좀 나와 있어서.’ ‘그래, 네 시간이 그러면 할 수 없지, 알았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에게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본다. 자녀에겐 한없이 유연하면서 부모님께는 꼭 가야할 일이 생겼을 때만 찾아가는 자신을 본다. 베어 놓은 부추를 품 가득 안고 안으로 들어온다. 펼쳐진 신문위에 놓는다. 뻣뻣하다. 먹을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연한 줄기만 골라 담는다. 꽃대를 골라내고 딱딱해진 뿌리 부분을 잘라내니 연한 부분은 겨우 한 줌 정도다. 손으로 연한 줄기를 골라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과제물을 받아 그걸 해결해야 하는 학생처럼 나는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다. 어머니는 왜 부추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을까. 꽃이 올라오고 뻣뻣해진 부추를. 내가 당신께 왔으면 하는 마음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 마음이 아릿하다. 무엇이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알고 계시기에 내가 가꾼 하잘 것 없는 것들이라도 즐겁게 받아주신다. 호박잎도, 청량고추도, 수세미도, 노각 한 두 개라도. 아이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손녀에게 영상통화를 하며 정을 나누고 살고 있다. 그런 내가 내어머니에게 누구인지 자꾸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다듬은 부추를 챙기고, 내 마음을 챙기고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